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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01 23:34
   
운동화 세탁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577 [116]


운동화 세탁

 

연말 되어 서랍 정리를 하다가 대학시절 수첩 하나가 나왔다. 휙 하고 넘겨보니 뒷부분에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빼곡하게 적혀있어서 신기했다. 아직도 매년 사전만한 두께의 교회주소록을 출판하고 있는 감리회 목사에게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닌데 거기 적힌 삐뚤빼뚤한 내 글씨와 추억의 이름들을 보면서 ‘그땐 왜 이러고 있었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저녁에 폰으로 틱틱 두드리면 새벽에 문 앞에 물건이 와 있는 시대, 효율과 속도의 시대 살고 있으니 뭐든 맡겨서 해결하는 요즘이다. 사람들 비위까지도 좋아진 것인지 돈이 되는 일이면 지극히 사적인 남의 집 문 앞 심부름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각종 서비스와 앱을 개발하고 그런 것을 통해 돈 벌이 할 수만 있으면 기막힌 발상이요 능력으로 여긴다. 생각은 보수인 사람들도 편의는 급진이다. 이런 것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만큼 쉽게 익숙해지다 못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로 길들여지고 있다. 뭐든 배달하고 받아보고 구독하기에 문 앞에 뭔가 있으면 주문한 당사자가 ‘저게 뭘까?’ 궁금해 할 지경이다. 나도 그런 속도에 끌려가듯 뒤쳐져서 엉거주춤 따라가고 있다. 물건을 사서 들고 집까지 오는 것이 시간 비용으로 볼 때 비효율적인 행동처럼 여긴다. 고장 나고, 해지고, 더러워진 것을 가져가서 고치고, 수선하고, 직접 세탁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집에 돌아와서 현관에 보니 짙은 회색 운동화가 보인다. 원래는 흰색이었는데 저걸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신고 다녔다. 별 문제 없기는 한데 꼬질꼬질 괴죄죄한 내 형편을 발끝에 달고 선전하며 다니는 느낌이라 새삼 부끄러웠다. 새 것이나 고급스러운 것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지저분하거나 추레해 보이지 않아야하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세탁기 위에 있는 바르는 세제와 쓰다 버린 칫솔 하나 들고 신발을 빨겠다고 나서니 집사람이 말린다. 그거 맡기면 훨씬 깨끗하고 금방 되는데 뭐하러 그걸 직접 빠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따뜻한 물에 담궈서 불리고, 세제 바르고, 솔로 닦고, 행구고, 털어 너는 일이 시간도 걸릴 뿐 아니라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한 세제, 신속한 세탁과 건조과정을 거쳐 비닐에 깔끔하게 새것처럼 포장되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서비스가 있는데 뭐하러 그걸 하고 있냐는 물음이야말로 미련한 나를 일깨웠다.

 

괜한 짓을 그만두고 다시 운동화를 내려놓고 신고 문밖으로 나섰다. 늦가을 바람이 무슨 바람이었을까? 밖에 잠깐 일을 보고 돌아와서 나는 운동화 세탁을 애초에 포기한 적 없다는 듯이 다시 신발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 좀 뿌려놓으라고 부탁을 해둔다.

 

잠시 후에 의자 하나 놓고 주저앉았다. 세제를 바르고 솔로 문질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찌든 얼룩을 무념무상 치대고 있으니 소환되는 기억이 있다. 큰맘 먹고 부모님과 사러 간 운동화. 집에 와서도 몇 번 신어보고 거울로 비춰보다가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 놓고 잠들었다. 아침 등교시간, 방안에서부터 신고 나왔을 때 그 기분. 현관문 열고나서 구름 위를 걷듯이 조심스러웠던 그 사뿐한 기분이 아직 살아있어 놀랍다. 깨끗하고 매끈한 운동화도 며칠 지나고 나면 흙먼지 묻고, 구김살 생기면서 들뜬 기분은 가라앉는다. 집에 돌아와 밟힐 새라 신발장 맨 안쪽에 들여놓던 정성도 이쯤이면 시들해진다. 그 한 켤레로 한철 지내고, 어느 토요일 오전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어머니 말씀하신다. 신발 벗어서 마당 수도꼭지 옆 대야에 놓으라고... 수돗가에 앉아서 큰 칫솔처럼 목이 긴 운동화솔로 빨래비누 묻혀서 깔창 밑 깊숙한 곳까지 꼼꼼히 문지르고, 깔창에 운동화 끈까지 깨끗이 세탁해 벽에 기대어 널어 두셨다. 뭔가 딱딱하게 마르고 나면 정성껏 신발 끈 꿰매고 다시 신는 그 기분은 새것을 신던 느낌과 분명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상쾌하고 좋았다. 기억이 스쳐가는 동안 추억에 새겨진 절차를 고스란히 거쳐 말갛게 씻긴 운동화를 널었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편의와 효율은 모르겠는데 돈 몇 천원과 바짝 마른 소중한 기억은 건졌다.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운동화 세탁하다보니 정말 내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맡길 수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한 해의 끝에 결산하고 평가하고 성찰하는 일이야말로 도무지 다른 이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다.

 

신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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