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의 한국교회
우리는 이제 다문화사회에서 살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변에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이상한 일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필자가 독일로 유학을 갔을 때가 1989년이었다. 그 때만 해도 외국인이라고 하면 영어를 말하는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주한미군 등의 미국인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2002년도에 돌아오니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외국인은 미국인 외에도 다양해졌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더 나아가서 러시아와 동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로 나타났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명동에 나가보면 한국인 보다 중국이나 일본 등의 관광객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2010년 기준으로 13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면 약 150만 명 정도가 되고, 비율로 치면 2.8% 정도이다. 지금도 외국인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또는 결혼하여 들어오는 이들의 숫자가 많은 것이다. 현재 외국인과의 결혼은 전체 결혼비율로 약 8% 정도가 되는데, 이는 2005년이나 2006년의 약 15% 정도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드는 추세이다. 하지만 결혼의 약 10% 정도가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면 머지않아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로 깊숙이 진입하게 될 것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먹고살기가 어려워 가족의 생존을 위해 돈 벌러 외국으로 많이 나갔다. 대표적인 경우가 독일로 간 간호사들과 광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이렇게 독일에 왔다가 교포로 남아있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과거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때면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이 없었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베트남 전쟁 중에 돈을 벌기 위해서 생명을 내걸고 나아갔던 이들, 오일머니를 벌어오기 위해서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건설현장을 누볐던 이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나아갔던 이들. 정말 세계 곳곳에 가족을 대신하여 희생하며 나아갔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도저히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그 미래가 암담했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나갔던 이들이다.
현재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 찾아온 이들이다.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 돈을 벌기 위해 외국을 헤매야 했었던 우리의 처지에서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오는 나라가 되었으니 큰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눈물을 흘렸듯이 이들 역시 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서 그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와 미래를 허락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을 지키게 하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애굽의 기억을. 그리고 외국에서 눈물 흘리며 씨를 뿌려야 했었던 우리의 과거를. 이 기억으로 오늘 우리를 찾아온 외국인들을 도우며 보내는 선교가 아니라 맞아들이는 선교를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성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