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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2-11-12 21:39
   
흥보야 놀보야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7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465 [108]

 

 

흥보야 놀보야

 

  오랜만에 무대 바로 코앞에서 실감 나게 연극 구경을 하였다. 우리 동네에서 ‘서울 귀경’보다 더 흥미진진한 연극을 볼 줄은 미처 몰랐다. 게다가 요즘 10대 청소년들이 고전 ‘흥보전’을 무대 작품으로 올린다는 생경함도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이틀 동안 공연을 이어간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강당은 웬만한 아이돌 뺨치게 관객이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그중에는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뜨거운 팬심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8학년 학생 모두가 무대 위에 출연하거나, 무대 곁에서 연주를 맡았다. 알만한 배우들이 등장하니 연극 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혜성은 소리꾼1을 맡아 넉살 좋게 판소리 대목을 연기하였다. 목소리에 표정을 얹으며 관객의 기대를 북돋아 주었다. 유민이는 흥보 마누라 역을 맡았는데, 주인공과 다름없는 연기력을 요구하는 배역이었다. 이레는 무려 다섯 가지 역할을 소화했는데, 흥보 막내아들, 꽃님이, 동자, 각설이패 등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제비무리 중 한 마리까지 영역도 따지지 않았다.

 

  나는 세 소녀가 등장하는 장면을 행여 놓칠 새라, 두 번을 연거푸 관람하였다. 흥보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국민 드라마이기에 무대 위에서만 전개되지 않고, 관객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마당극과 같았다. 그만큼 관객의 반응이 높았고, 호응에 들떴다. 소리꾼 1, 2는 판소리 투의 대사를 주고받으며 흥보가의 시작을 알렸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어름에 놀보 형제가 살았는디 흥보는 아우요, 놀보는 형이라. 사람마다 오장이 육본디 놀보는 오장이 칠보라. 어찌허여 칠본고 허니 왼편 갈비 밑에가 장기 궁짝만허게 심술보 하나가 딱 붙어 있어 본디 심술이 많은 놈이라. 그 착한 동생을 쫓아낼 량으로 날마다 심술공부를 허는 디 꼭 이렇게 허든 것이었다...”

 

  이번에 배웠는데 흥보와 놀보 형제의 성은 박가(朴哥)였다. 대개 성이 없이 ‘흥부와 놀부’라고 불리거나, 제비 연(燕)자를 써서 두 형제를 연생원의 아들로 일컬었다. 성이 여럿인 점에 비추어 보면 흥부놀부는 옥신각신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든 형제지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다. 흥보전은 세간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졌다. ‘흥보전, 박흥보전(朴興甫傳), 놀부전, 연(燕)의 각(脚), 박흥보가, 흥보가, 놀부가, 박타령’ 등이다. 

 

  이름이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흥부전’(興夫傳)에 따르면 이야기의 근원으로 4가지를 꼽는다. 그 갈래는 고유한 설화, 고유설화와 외래설화의 혼합, 몽골설화, 불교설화로 추론한다. 특히 몽골의 ‘박타는 처녀 설화’는 ‘흥부전’과 내용이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유사한 이야기는 일본과 중국에도 있고, 서양 동화에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형제들의 불화는 모든 부모의 근심이고, 두 진영 간 뿌리 깊은 대립을 반영한다. 

 

  물론 한국판 이야기 구조는 여느 나라보다 훨씬 더 철학적이고 동시에 우화적이다. 흥보전은 윤리소설로 인과응보적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가족소설이다. 선하고 악한 형제가 두루 등장하는 선악형제담,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짐승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보은담, 어떤 물건에서 한없이 재물이 쏟아져 나오는 무한재보담은 흥보전을 이어가는 주요한 연결고리다. 물론 유교적 윤리도덕을 내세우는 것만이 흥보전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창작 당시 그 시대의 신분 관계, 물질적 가치관, 도덕적 세계관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오늘날 할 말이 더 많을 것이다.

 

  10대의 배우들에게도 흥보와 놀보의 마지막 화해 장면은 조금 어색했던 모양이다. 우리 사회가 겪는 어른들의 갈등과 대립, 불화와 분노 따위 온갖 신경증세에 대해 두루 알만한 나이이기에 두 형제 사이의 수월한 화해 대목은 터무니없다고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 좋은 흥보와 좋게 변한 놀보의 뻔하지만 극적인 화해는 기분 좋은 메시지였다. 그것은 옛날이야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연민과 공감, 연대 의식으로 이루어갈 화목함(고후 5:18)의 모델일 것이다.

 

  신재효 판소리집 ‘흥보가’의 맨 마지막 대목이다. 재산을 다 털린 놀보는 방성통곡 후에 체면불구하고 아우 흥보를 찾아간다. “흥보 집 찾아 나니, 흥보가 대경하여, 극진히 위로하고, 제 세간 반분하여, 형우제공(兄友弟恭) 지내는 양, 누가 아니 칭찬하리.”​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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