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갑시다
이웃교회 교인인 심OO 권사님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목요일마다 있는 반찬 지원 대상에서 몇 달 번부터 제외되었다. 이유는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중복 수혜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일로 격주에 한 차례 방문해서 반찬을 전해주고, 기도를 하고, 대화를 나누던 두 가구 중 하나가 명단에서 사라졌다. 이 할머니 권사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반찬가게에서 싸주는 몇 가지 반찬이 아니라 그것을 들고 와서 생색 내면서 손잡고 기도하고, 한 시간 정도 수다 떨고 가는 목사의 방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명단에서 사라지고 나니 나도 별수 없이 한 가구만 방문해서 반찬을 전하고 심 권사님을 찾아가지 못했다. 사실 핑계다.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뜨겁게 기도하지만, 때로는 했던 말씀을 반복하고, 또 듣는 중에 지칠때도 있었기에 이렇게 된 것이 내심 반가워하며 전화만 간단히 드렸었다.
아무리 그래도 4년 넘게 찾아갔던 할머니 권사님 댁에 전화 몇 번하고 석 달 동안 발을 끊으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지원 대상을 찾고 제외 하는 것이 일인 사람에게야 한 사람이 서류 한 줄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지만, 직접 반찬과 선물 들고 배달하면서 손잡고 기도했던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에 반찬은 들고 있지 않았지만 지역 농산물 장터에서 사과대추 작은 상자 하나를 사들고 팔곡동으로 갔다. 근처에서 전화했더니 연신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경비실에 자동문을 통과해도 아직 닫힌 문이 남아있는 여느 집들과 달리, 없는 것처럼 늘 열려있는 다세대주택 유리 현관문 지나 낮에도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에 들어서면 전단지 이리저리 붙여져 있는 권사님 댁. 문 두드리고 들어가니 허리 다리 손목에 깁스 붕대 감고계신 낯선 모습의 권사님이 병원침대 위에서 나를 맞이하셨다. 크게 다치신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윗층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 전동 킥보드가 건물 현관에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어 들어갈 수 가 없었단다. 하나 치우고 들어가겠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잘못 당겨지는 바람에 급발진이 되어 건물 밖으로 딸려나가 내동댕이쳐지신 것이다. 허리와 가슴, 팔목에 큰 부상을 입어 한 달 동안 병원에 계시다 엊그제 겨우 집에 돌아왔다고 말씀하셨다. 만나지 못했던 석달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으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나는 목사님 못 볼 줄 알았어요.”
손을 잡고 기도했다. 회복으로 시작했던 기도의 언어가 점점 회개 쪽으로 갔다. 안부를 묻는데 노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고통이 많았던지라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구구절절 길어지니 대추 여남은 개 씻어서 그릇에 담아 방에 가져갔다. ‘이게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냐’시며 그 자리에서 잡수셨다.
송파 세 모녀, 수원 세 모녀, 복지 사각지대, 고독사 문제를 이슈로 만들고 쟁점화하기 전에 교우들과 내 주변에 연결된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일부터 시작함이 옳다. 독거노인들에게 우유 배달하면서 안부를 묻는 산동네 울보 목사 이야기(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님부터 시작한 우유 안부)를 되짚어 본다. 사랑에 꾸준함이 더해지고, 돕는 손이 이어지면 나아질까?
1인 가구를 위한 사과 한 알, 대추 한줌, 달걀 몇 개라도 좋다.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간절히 기다리는 한 사람 손을 잡으러 기꺼이 한 시간을 낼 수 있는 또 한 사람이 필요하다.
신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