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과 함께 가라》 (Vaya Con Dios, 2002)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대개 그런 것이 늘 그런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는 특별히 독일 영화에 적용되는 진리다. 철학적 사고와 심오한 예술 등 재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독일인들은 영화 역시 꼭 자기들처럼 만든다. 그래서 ‘독일 영화’ 하면 일단 지루함을 예상한다. 실제로도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를 많이 생산해내는 독일인들의 영화 전통을 볼 때 이런 선입견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개 그런 것이 늘 그런 것이 아니듯, 가끔씩 독일 영화에도 세계 보편 감성에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 가라》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내내 유머를 잃지 않고 진지함도 유지하는 훌륭한 미덕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상의 가톨릭 교파인 칸토리안 교단의 수도사들이다. 칸토리안 교단은 성령을 소리라고 믿고 찬양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믿는다. 그로 인해 1693년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아 파문된 칸토리안 교단은 현재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에 하나씩 단 두 개의 수도원만 남아있다. 속세를 떠나 행복하게 찬양으로 수행하던 소수의 수도사들은 어느 날 후원이 끊어지고 갑작스럽게 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위기를 맞는다. 죽기 전 원장은 남은 세 명의 수도사들에게 자신들이 200년 동안 보관해왔던 칸토리안 교단의 규범집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유일하게 남은 같은 교단의 수도원으로 떠나라는 유언을 남긴다. 신앙 때문에 오래 전 세상을 떠났거나 어려서부터 수도원에서 자라 세상물정을 모르는 수도사들은 유일한 피난처에 다다르기 위해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세 명의 수도사들은 많은 로드무비들에서 그렇듯 여행 가운데서 세상을 겪고, 혼란을 겪고, 유혹을 겪고, 위험을 겪고, 믿음을 겪으며 스스로를 찾아나간다.
‘신과 함께 가라’는 뜻의 원제목 ‘Vaya Con Dios’는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다. 작별할 때 사용하는 말로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스페인어의 작별인사말인 ‘Adiós’ 역시 ‘A Dios Vos Acomiendo’, 즉 ‘신에게 당신을 맡깁니다’라는 말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영어의 ‘Good-bye’ 역시 ‘God be with you’의 고어 형태인 ‘God be with ye’에서 온 말이라 하니 서양 언어에 배어있는 신앙 역시 무구한 것이지 싶다.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전하는 ‘신과 함께 가라’는 인사말, 성경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나그네라 했으니 어쩌면 이 인사말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사말일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이 세상 어디에도 머무를 곳 없는, 늘 길 위를 떠도는 영혼의 나그네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의 그 길을 신과 함께 가라.”
세 명의 수도사들이 여행을 마치는 순간까지 칸토리안, 즉 ‘찬양하는 사람들’인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찬양의 울림은 영화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부르는 찬양들은 영화의 배경이 아니라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대미를 장식하는 한 곡,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 찬송가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유혹의 때를 통과하며 울려 퍼지던 찬송, 우리 찬송가에는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라는 제목으로 담겨있는 찬송의 울림은 영혼을 흔들며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원래 독일 찬송가인 이 찬송의 독일어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의 하나님만이 삶을 주관하시게 하며 언제나 그에게만 희망을 거는 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모든 곤경과 슬픔 가운데 경이롭게 보존하실 것이다. 하나님, 지존자를 의지하는 자, 그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이 아니다.” 가사는 또 이런 내용도 담고 있다. “노래하고 기도하며 신과 함께 가라. 그리고 선을 행하라.” 그렇다. 우리는 결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찬양하고 기도하며 신과 함께 가야 한다. 선을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