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그리고 보름달
이슬람교에는 공식적으로 상징물이 없다. 물론 꾸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초승달을 가리켜 알라를 상징한다는 말도 하지만, 그런 가설 자체가 근거가 없다. 다만 초승달은 ‘진리의 시작’을 의미한다. 깜깜한 그믐이 지나고 처음 떠오르는 달이 초승달이다. 예언을 받은 그때, 초승달이 떴다고도 한다.
이슬람을 믿는 나라 중 여러 나라들은 국기에 초승달과 별을 넣었다. 원래 초승달과 별은 오스만 터키가 처음 국기에 사용하였다. 지금도 튀르키예는 물론 아제르바이잔, 말레이지아, 파키스탄, 우스베키스탄, 튀니지, 모리타니 등 20개 나라는 공통적으로 국기에 초승달과 별을 넣었다. 초승달은 하나이지만, 별의 숫자나 모양은 제각각이다. 별의 5각형은 이슬람교의 5대 계율인 신앙고백(샤하다), 기도(살라), 금식(라마단), 희사(자카트) 성지순례(하지)를 뜻한다.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 연맹은 회원국마다 빨간 십자가와 빨간 초승달 심벌을 사용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빨간 다이아몬드(다윗의 별)를 쓴다.
초승달은 빵 이름에도 담겨있다. 프랑스어 크루아상(croissant)은 버터를 많이 넣어 바삭하게 구운 페이스트리 종류 중 하나이다. 그 이름은 초승달(crescent)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현대적인 크루아 상은 1839년 오스트리아 포병 장교였던 아우구스트 창이 프랑스에서 빵집을 열면서 만들어 판 것을 여러 빵집에서 모방하면서 보편화된 것이라고 한다.
보다 유력한 근거는 17세기, 당시 오스트리아 빈을 포위한 오스만 터키 군대가 땅굴을 만들어 잠입을 시도하다 마침 이튿날 빵을 만들기 위해 밤새워 일하던 제빵사 피터 벤더에게 들켰는데, 피터는 그 공로로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 독점권한을 얻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오랜 유래는 13세기 부터 만들어 먹었다는 키펠이란 빵이 원조라는 설이다. 공통적인 것은 빵이 모두 초승달 모양이라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빈은 서유럽의 경계 도시이다. 지금도 서유럽 밖 동부와 중부유럽, 발칸과 캅카즈 그리고 중동으로 가는 많은 비행기들은 빈에서 환승한다. 유럽연합(EU)에 속하지 않은 주변 나라들의 국민에게 빈은 지리적으로 서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처럼 인식된다. 과거 오스만 터키가 신성로마제국을 침략하자 서방 세계는 위기의식을 키웠고, 이슬람 포비아에 휩싸였다. 초승달 빵을 씹어먹는 일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편이기도 하였다. 크루아상의 역사적 시시비비가 깊은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2013년 8월 2일, 이슬람 샤리아위원회에서 율법적 결정을 통해 크루아상의 판매를 금지 시켰다. 금지 이유는 초승달 모양의 빵이 식민지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또 다른 이유는 크루아상의 역사에서 보듯 ‘초승달’ 모양이 이슬람의 패배를 비유한 이유일 것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아라랏산에 대한 애정이 몹시 크다.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바로 그 산을 말한다(창 8:4). 아라랏산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코비랍에는 아르메니아의 신앙적 뿌리와 정체성을 품은 코비랍 수도원이 있다. 홀로 우똑 선 아라랏산은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데, 무려 해발 5,165미터에 이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 국경 밖 튀르키예에 속한다. 불과 그 거리가 멀지 않아 튀르키예 사람들과 종종 시비거리가 된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묻는다. “너희는 우리나라에 있는 아라랏산을 왜 너희 것처럼 말하느냐?” 사실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아라랏산은 마음의 산이며, 신앙의 산이어서 뭇 상징물로 사용하는 중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도 할 말이 있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꾸하였다. “그러면 초승달은 너희 것이냐? 왜 국기에 초승달을 사용하느냐?”
눈썹 모양의 초승달이 점점 자라면 보름달이 된다. 초승달은 새로운 달로 시작을 뜻한다면, 보름달은 그달의 정점에 위치한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무교절과 초막절 등 주요 축제는 보름에 시작하였다.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시 81:3). 보름달이 뜰 때면 집을 떠난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추석의 보름달은 온누리에 희망으로 비추고 있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