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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9-07 00:33
   
고기덕후 세종대왕과 조선판 프라이드치킨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0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110 [115]

 

고기덕후 세종대왕과 조선판 프라이드치킨 

 

이천에서 30분 정도 이동하면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이 있다. 우리나라 왕 중에서 가장 유명한 왕이 세종대왕 아닌가? 1469년에 세종대왕의 묘를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550년 이상 된 왕릉이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이곳에 가 보았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니 앞쪽에 길쭉하고 서 있는 아담한 단층건물안에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건물과 카페가 있다. 역사문화관 관람은 무료다. 전시관 안에는 각 분야에 걸쳐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참 부지런히 많은 업적을 남긴 왕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문화관 건물을 나서서 왼쪽으로 100여 미터 걸어가면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는 500원으로 저렴하다. 입구부터 세종대왕의 묘가 있는 곳까지는 약 1km가 채 안되는데 들어가는 길 오른쪽 산자락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걷기 좋은 길이 펼쳐져 있다. 100여 미터 걸어 들어가면 양갈래길이 나타나는데 왼쪽은 세종대왕 영릉(英陵)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효종대왕 영릉(寧陵) 가는 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가다보면 굉장히 넓은 마당 끝쪽에 세종대왕 동상이 서있다. 좀 더 걸어가면 지금은 작은 책방으로 바뀐 영릉재실이라는 건물이 있다. 커피 한잔, 책 한권 들고 가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다. 

 

제일 안쪽에는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이 있다. 1446년 세종 28년에 소현왕후가 죽었다. 당시 광주(廣州) 헌릉의 서쪽에 무덤을 만들었고 후에 세종대왕이 죽은 후 합장하였는데 1469년에 현재 여주로 옮겨왔다고 한다. 풍수 지리적으로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어서 옮겼다고 하는데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정말 명당의 자리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빼어난 환경이다. 이곳에 오니 세종대왕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세종대왕은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세종대왕은 고기를 아주 좋아했던 미식가였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다.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운동은 싫어했고, 왕이 몸을 쓰는 일은 직접 할 일이 없었으니 운동량도 거의 없었다. 조선시대 왕들은 하루 다섯 차례 12첩 반상과 간식 등 호화로운 식단을 챙겨 먹었는데, 특히 세종은 육류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육식을 많이 좋아했다. 그 결과 그의 나이 28에 소갈병(당뇨병)이 찾아왔다.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고 54세로 죽기 전까지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을 했다.

 

그는 고기덕후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연회장에서 자신의 상보다 신하들의 상에 고기가 더 많아서 크게 화를 내며 신하를 혼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기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만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의 모습보다 실제 모습은 훨씬 비만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의 아버지 태종은 세종 즉위 4년 만에 숨을 거두었는데 당시 궁중예법에 따라 상중 3년동안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에 고기를 좋아하는 세종에겐 비록 아버지가 죽은 이후 3년의 기간은 엄청난 큰일이었다. 그러나 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태종은 자신이 죽은 후 고기를 저렇게 좋아하는 아들 세종이 무려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 싶어 “내가 죽어도 세종은 고기반찬을 꼭 먹도록 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효심 깊은 세종은 고기를 끊고 예를 갖추지만 불과 두 달 만에 금단현상으로 몸이 허약해져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다시 먹게 된다. 

 

"한 가지 병이 나으면 또 다른 하나가 생긴다."고 하소연 할 정도로 당뇨 뿐 아니라 신경통, 관절염, 눈질환 등 성인병을 달고 사는 세종대왕을 위해 중전과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합심해서 채식 위주의 수라를 올리지만 세종은 고기가 없는 밥상을 먹지 않았다. 이에 닭고기만 수라상에 올리기로 타협했지만 거듭된 백숙요리에 지친 세종은 궁을 탈출해 민가의 주막에서 고기를 먹다 들키는 일도 일어난다. 

 

세종의 건강을 걱정한 어의는 매일 같이 닭고기 요리의 조리법 개발에 나서고, 우연한 기회에 기름 솥에 빠진 닭고기의 맛이 기막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름에 지진 닭요리라는 뜻으로 ‘포계(炮鷄)’라고 이름 붙인 조선최초 프라이드치킨을 세종은 아주 좋아했다. 심지어 하루에 2마리 분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1450년 어의 전순의가 지은 가장 오래된 음식 책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세종이 즐겼다는 포계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포계는 살찐 닭 한 쌍을 24-25개로 잘라서 먼저 솥 속에 기름을 넣고 달군 뒤에 청장(숙성기간 1년 이내의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가루즙을 넣어 익힌 후 식초를 넣어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간장 치킨과 비슷한 맛을 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 외에도 세종대왕이 당뇨를 치료하기 위해 먹었던 특별한 음식은 백웅계의 고환(睾丸)요리다. 백웅계는 흰 수탉을 말한다. 백웅계의 고환요리는 당뇨치료뿐만 아니라 정력강화를 위해 먹었던 강장제이기도 하다. 백웅계의 고환을 벌꿀과 달걀 흰자를 섞어 살짝 데친 요리가 늘 수라상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종대왕은 정실 왕비인 소헌왕후 이외에도 10명의 후궁을 두었고, 도합 11명의 처와 첩을 통해 모두 18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얻었다. 

 

임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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