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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4]
 
 
 
     
 
 
 
작성일 : 22-08-21 00:56
   
마루의 푸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50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016 [126]

 

 

마루의 푸념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처럼 반려동물 가방에 실려 왔다. 버버리 무늬의 그물망 가방은 언제나 나를 이상한 신세계로 이동시킨다. 물론 가방 안에 갇힌 나는 기대보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이번에도 한 달 이전처럼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방에 갇혔는데, 도착해 보니 영락없이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에 살던 그 집이 틀림없다. 곳곳에 내 냄새가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심장이 서늘해졌다. 잠시 긴장했으나 머리를 몇 번 흔들면서 이내 정신을 차렸다. 긴장이 풀어진 것은 새 주인과 옛 주인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내 이름 ‘마루’를 부르며 나를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옛 주인은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옛정까지 미워할 수는 없지만, 한 달간 나를 방치한 서운함마저 잊은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나를 받아준 새 주인은 가족 모두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위해 음식도, 화장실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하루에 네 끼 음식을 주었는데, 자동급식기에서 시간 맞춰 공급되었다. 누구 눈치를 보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 급식 방법이었다. 이전 주인은 하루에 겨우 두 끼, 그것도 정오와 자정 두 차례 종을 치고 서둘러 달려가면 앉으라고 뜸을 들이는 등,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부자유를 강요받았다. 심지어 국물을 내고 남은 젖은 멸치를 먹이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살던 새 주인의 집은 아예 시스템이 달랐던 것이다. 누구보다 나와 같은 동포인 2B를 어찌 잊을까? 똑같이 자동급식기 앞에서 대기하는 처지이지만, 2B는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고 나를 배려할 줄 알았다. 침입자인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으나, 단 한 번도 해코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인인 내게 자기 영역을 조금씩 양보하였고,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아량과 배려를 발휘하였다. 

 

  실은 둘 다 중성화 수술을 한 처지에서 민망한 이야기지만 2B는 내게 첫 이성이었고, 두어 살 연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의 밥그릇을 넘보았지만, 차차 그의 화장실은 물론 심지어 캣타워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넘보게 되었다. 하나씩 자신의 몫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2B는 상남자였다. 2B는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나, 조금씩 마음이 끌린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드라마 속 달콤한 대사처럼 “고양이의 짝사랑”은 무죄이다.  

 

  꼭 한 달 전, 나는 2B네 집에 임시로 맡겨졌다. 처음부터 남의 집에 보낼 정도로 몰인정한 옛 주인은 아니었다. 가족은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큰아들은 신혼인데 아내의 알레르기가 걱정되었고, 둘째 아들은 서울 강북의 옥탑방에 사는데 세입자 규정 때문에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한때 나는 사랑받던 이들로부터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다. 그런 순간, 같은 동포인 2B를 키우는 새 주인의 배려로 더부살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 주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반려철학이 달랐다. 옛 주인은 그저 나를 덤으로 사는 짐승으로 생각하여 늘 수혜자 취급을 하였다. 본디 야생동물인 나의 맹수적 특성을 무시한 채 주인의 입맛에 따라 오로지 식물성 사료만 주었기 때문이다. 밥 먹는 시간마저 들쭉날쭉하니, 비록 노예심리를 키운다지만 자동급식기 시스템이 한결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100% 콩비지로 만드는 배변용 두부모래 만을 사용했는데, 새 주인은 이를 바꿔야 한다는 강한 신념의 사람이었다. 특히 지금 같이 습도가 높은 한여름에는 곰팡이나 악취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동화 <딕 헌팅턴과 그의 고양이>에서 딕과 같은 인물이었다.  

 

  옛 주인은 한 달간 독일에 다녀왔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 길고양이들이 많더라고 하였다. 그런 고양이들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부류가 아니라, 관광지의 일부이고, 마을 풍경의 부분처럼 보이더라는 얼토당토한 이야기였다. 도둑고양이의 생리를 강요받는 한국적 풍토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길고양이의 한탕주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물론 한국의 거리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고양이 소머리 줏은 격”으로 버리긴 아깝고 두고 먹기는 어려운 법이다.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지만, 나도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것이다. 다시 내 삶을 간섭하기 시작한 옛 주인은 독일에서 본 반려동물 묘지가 마치 놀이동산처럼 휘황찬란하더라고 나를 미혹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 있을 때 맹수다운 품격을 누리고 싶다. 더 이상 주인에게 버림받기 싫고, 버버리 그물망에 갇혀 이러 저리 돌림 당하는 것도 분하다. 종종 나도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말처럼 인간을 돕고 싶다.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살 수 있도록 ‘묘격’(猫格)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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