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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22-08-19 04:48
   
보고싶은 각설이
 글쓴이 : dangdang
조회 : 5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008 [136]


보고싶은 각설이

 

코로나19팬데믹 이전에는 가히 각설이 전성시대라 할 만했다. 여름휴가 중인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 삼포해수욕장엘 들렀다.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한가로이 백사장을 거닐 때쯤, 누더기를 걸친 각설이의 입담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였다. 가을에는 내장산 단풍놀이를 갔다가, 넓은 주차장의 반을 점령한 각설이를 보았다. 몇 년 전에는 봉숭아꽃잔치 준비에 도움을 받고자 강릉 단오제를 찾았는데, 많은 사람을 모으고 폭소가 터지는 판을 벌이는 건 각설이였다.

 

각설이 타령을 만들어 부르던 원조 각설이가 김시라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문학 사랑방’ 시낭송회에서였다. 황금찬, 박화목 선생님을 중심으로 매주 10명이 자작시를 낭송하는 공연이 대학로의 연극 전용 극장인 ‘왕과시’에서 열렸다. 김시라가 전라도 시골에서 시작한 각설이 타령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서 가까운 도시로 나오고, 거기서 성공해서 서울에 입성하여 20여 년의 장기 공연으로 왕과시 극장을 세웠다. 한국 연극계의 전설이 되었지만, 그에게 시인이 되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시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극장을 시낭송회 장소로 내놓은 것을 사명처럼 생각했다. 당시에 그의 연극 품바타령에서 배출된 각설이들이 연극계와 TV, 영화계에서 명성을 날리고,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라 불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극장을 아무 조건 없이 내어 주며,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무대를 장치를 손보고, 조명을 담당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빛만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했다.

 

우리나라에 산재한 고인돌을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정부가 강화에서 고인돌 축제를 열었다. 세계의 고고학자 20여 명을 초청하고 동수의 시인들을 파트너로 불렀다. 공연과 학술 세미나를 마치고 고인돌 앞에서 자작시를 낭송할 계획이었다. 유네스코 책임자로 참석한 사람이 40-50대로 보이는 일본인 여성이어서 그런지, 일본 전통 예술 공연을 하는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마니산이 배경이 되고, 넓은 평야에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깊이와 위엄을 자랑하는 고인돌 앞에서 시낭송회가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최 측에서 급히 준비한 대형버스에 외국 초청 인사와 시인들이 타고 문화유적지 관광을 나섰다. 흰 피부에 우아한 미소와 기품 있는 목소리로 난장판 분위기를 다독이던 정희경 의원이 김시라에게 품바타령을 청했다. 쏟아지는 빗소리와 영어와 한국어 낯선 이방인의 언어가 뒤섞여 흔들리는 차 안에서 노래라니? 당황한 눈빛이 교차했다. 그런데 김시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 순간에 변해 버린 눈빛 그리고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절절함. 김시라의 목소리는 버스 차창을 넘어 세상을 다 멈추게 할 것 같았다. 모두 그대로 화석이 되고 말았다. 자그마한 키에 말총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흰 모시 한복을 입은 온화한 얼굴 어디에서 그런 광기가 나오는지 노래가 끝나고도 감히 정적을 깨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시낭송회는 취소되고, 배정된 숙소로 가서 쉬고, 다음 날은 비행기로 화순의 고인돌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시인들은 너무 아쉽고 허탈했다. 오직 단 몇 분의 순간을 위해서, 몇 날 몇 밤을 새워가며 시를 창작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가다듬었던가. 삼삼오오 흩어져 술집으로 가기도 하고, 식당을 찾기도 했는데, 마음에 맞는 몇 명은 찻집엘 들어갔다가 노래방으로 옮겼다. 나는 음치지만 시인들과 음악가들이 노래방에 가면 정말 재미있다. 연극쟁이가 있어도 무엇인가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품바 김시라가 있지 않은가? 마이크를 잡은 김시라는 제대로 품바로 변신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분위기로 흥을 돋우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부르고 춤을 추고 한바탕 놀고 났는데, 박수가 쏟아졌다. 문이 활짝 열리고 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12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찾아가니, 반듯한 호텔이 아니고 허름한 여관이었다. 행사 담당자도 이미 떠났고, 여관 관계자도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다른 숙소로 갔다고 생각했는지, 온돌방에 이불 한 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함석헌 선생의 뒤를 이어 씨의 소리를 발간하는 이양우 선생과 김시라, 그리고 내가 한방을 쓰게 되었다. 나이 지긋하고 사람 좋은 인천대의 유승우 교수도 슬그머니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내가 제일 어린지만, 모두 기독교 문인협회 회원들이라 먼저 누우라고 자리를 깔아 주었다. 자리를 옆으로 길게 펴고 같이 누워, 이불은 배만 덮고 눈을 붙이자고 얘기했지만, 고집을 부리는 건 김시라였다. ‘나는 이런 자세가 더 편하다’며 벽에 등을 대고 머리를 무릎에 묻었다. 그리고 비에 젖은 흰 모시 적삼을 벗어서 몸에 걸쳤다. 옷이 눈처럼 흰 세모시가 아니었다면 꼭 다리 밑에 쭈그리고 자는 거지였다. 날이 새도록 입씨름만 할 수 없어서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눈을 떠보면 김시라는 미동도 없다. 어찌 보면 깊이 잠든 것처럼 편하게 보이기도 했다.

 

이튿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비행기로 이동해서, 화순 고인돌에서 축제를 이어가는 일정이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일행은 대기한 차까지 뛰어가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겉옷이 비에 조금 젖어도 괜찮은데, 얇은 모시옷을 입은 김시라는 비를 맞으면 벌거숭이가 될 수밖에 없다. 주저하는 그에게 내 겉옷을 벗어 걸쳐 주었다. 밤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도 눈을 한번 맞추더니 소리 없이 웃는 얼굴로 차에 올랐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화순 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시간 내서 대학로 한번 오세요. 여기 사람들과 멋지게 한번 놀아 보게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맑고 깊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부고란에서 김시라의 이름을 발견했다. 알아보니까 그의 소극장은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고, 지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문학 사랑방 시낭송회도 지방으로 순회하면서 그의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언제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에 관심을 두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하며, 시를 낭송하고, 시인들의 시중을 들고 어울리는 것을 행복해하던 품바 김시라. 그를 우리는 완전히 지워 버렸다. 그는 많은 것들을 내어 주었는데, 그가 힘들고 절실히 필요할 때는 정작, 아무도 그의 곁을 지켜 주지 못했다. 왜 대학로에 꼭 시간 내서 오라는 말을 가볍게 듣고 흘려 버렸을까? 어쩌면 위로와 격려가 가장 필요한 때였는지, 누군가가 손잡아 주어야 할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이웃 동네 음성에서는 가을이면 품바 축제가 열린다. 전국의 품바들이 몰려오고, 예전에 일상에서 대하던 다리 밑의 풍경이 재현된다. 힘들던 그 시절에는 피하고 싶고 지긋지긋했던 것들이, 정겹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소중한 것은 미소처럼 머물고 지나간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립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을 밝혀 준다. 맑고 깊은 눈빛처럼.

 

올해는 3년 만에 품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9월이 기다려진다. 각설이를 만나러 가야 할 그 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황대성/대소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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