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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4 00:40
   
포옹의 신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73  


포옹의 신비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라는 작품이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배경삼아 그린 것이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3)


  그림에는 집나간 아들이 정처 없이 방황하다 마침내 아버지께 돌아와 포옹을 나누는 순간이 담겨있다. 누더기를 걸친 지치고 피곤한 아들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말없이 그를 품어주는 아버지의 두 손에 자연스레 시선이 고정된다. 아들을 품는 아버지의 한 손은 남성의 손으로, 다른 한 손은 여성의 손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는 지금 굳게 붙드는 다부진 남성의 손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여성의 손으로 아들의 등을 애만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포옹으로 아들은 회복되어 다시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였으리라...


  이처럼 포옹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몸과 몸을 부비는 그 순간, 상대와 나의 거리는 제로가 된다. 그의 체온과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게 된다. 다름 아닌 내가 그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던 말씀은 ‘포옹’이라는 구체적 행위를 통해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포옹은 말로만이 아니라 상대를 몸으로 보고, 느끼고, 애만지는 사랑이다. 


  예수 역시 포옹의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시대의 변두리에 있던 창녀, 세리, 죄인들을 감싸 안았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이들을 과감히 보듬고, 품어준 것이다. 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 아닌가. 십자가는 세상 만물과 모든 죄인을 끌어안은 우주적 포옹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이것은 예수께서 어떤 이라도 다 품어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다 품어주시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을 못 박아 죽이는 군병과 조롱하는 이들조차 온전히 품어 주셨다. 그리고 이 한 번의 끌어안음이 우리에게 사랑을, 생명을,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품어주는 일은 어렵다. 때 많고, 더러운 누군가를 안으려면 나도 함께 더렵혀질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 가시투성이의 누군가를 안으려면 나도 약간의 생채기는 각오해야 한다. 아니, 때로는 손발이 뚫리고, 옆구리가 찔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함께 더렵혀질 마음이 없고, 내가 손해받기 싫어서야 누구를 품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를 살뜰히 품을 때, 포옹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서부터 비로소 사랑은 피어나고, 생명이 돋아나며, 평화가 이루어진다. 


  웨인 코데이로는 그의 책 <세상을 가슴 뛰게 할 교회>에서 “판단착오나 잘못, 실수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그 실수를 처리하는 방법이 치명적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허물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형편없는 사람일지라도 일단 마음으로 품어준다면 그의 잘못과 허물을 다 감싸 줄 수 있다. 십자가의 가장 큰 특징은 ‘원수조차 안아줌’에 있다. 당신의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지금 힘껏 안아보라. 그렇다면 그 한 번의 포옹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사랑이 오늘,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꽃피우게 될 것이다.


김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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