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신앙 감수성
‘나는 환경운동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인 나 자신을 변호하며 요즘 자주 하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녹색교회를 표방하고 녹색 신앙 운동에 집중한다니까 환경 운동에 열심인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말을 자꾸 부인하는 것은 우선은 부담스럽기 때문이고, 그보다는 녹색 신앙 운동의 방식은 뭘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제게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영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성은 감수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감수성, 사람을 향한 사랑의 감수성,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향한 생명의 감수성이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수성이 회복될 때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인간의 행위를 유발하는 내적인 태도와 정신과 동기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이를테면 탄소 제로 운동을 녹색 생명에 대한 감수성 회복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는 작년부터 ‘전교인 1만 보 걷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걷기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자가용 이용을 자제하도록 하자, 자신의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비 활동을 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탄소 발생을 억제하도록 하자는 정도의 고백을 나누었지요. 만 보 걷기운동을 시작하면서도 교인들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100명만 참여해도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교인들의 참여는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만큼 사람들이 건강을 챙기는 데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이지요. 긴가민가하던 걷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걷기운동을 통해 체험한 감수성 회복력은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몸의 감수성이 회복되었습니다. 회복되는 몸의 감수성은 건강에만 국한되지 않았고요.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세밀하게 느끼는 것과 함께 주변과의 관계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였지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로가 자세히 보이고 사람이 걷기에 불편한 인도와 자동차 우선인 도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널목과 지하도, 버스 정류장의 위치가 손에 잡혔습니다. 실핏줄같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골목도 보였지요. 높고 스마트한 건물이며 나지막한 작은 집들과 상점, 시장 점포와 찻집과 음식점을 보면서 주변 환경이 몸으로 느껴졌고요. 차와 사람으로 부대끼던 몸이 문득 평화로움을 느낄 때면 어느새 녹색 가득한 자연생태 속에 몸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이렇듯 몸의 감수성이 회복되는 은총을 느끼면서 함께 실행해온 게 있습니다. 1만 보를 걸을 때마다 교회에서 환경생태선교기금을 1백 원씩 적립하는 것입니다. 이 환경선교기금을 모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몇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지역 내 에너지 약자나, 마을 도시 정원 가꾸기 사업, 혹은 농촌교회 햇빛발전소 건설이나 기후난민을 위한 세계 선교기금 등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안을 가지고 교인들과 사용처에 대한 논의를 한 후에 최종 결정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2021년도 연말에 갑작스레 보르네오 선교지 교회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마나삐우스교회가 햇빛 발전소 건설을 요청해 온 것이지요. 감사하게도 뜻깊은 그 일에 동참하는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만보 백원 적립’의 등식은 걷기가 선물하는 감수성을 현실과 잘 연결하여 갈무리하는 멋진 기능을 수행해주었습니다.
1만 보 걷기운동은 작고 미미한 실천 운동입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운동입니다. 그럼에도 만보 걷기운동은 희망입니다. 이 작은 실천 운동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사람과 사회를 향한, 자연생태계를 향한’ 감수성 회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걷기운동을 지속할 때 이 감수성의 회복이 어디로 우리를 이끌지 궁금합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인간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계와 함께 구원받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시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