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 평양냉면장인의 정직한 자부심
서울의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인 ‘을밀대’에서 지인들이 모였다. 본점은 마포에 있지만 교통의 편리함을 고려해 무교점에서 모였다. 얼마 전 ‘서울 평양냉면의 계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간단히 소개한 적 있는 을밀대 평양냉면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먹어볼 겸 지인들의 모임장소로 추천했다.
11시 30분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11시 10분에 도착했지만 일행이 5명이라 하니 다 와야 들여보내준단다. 그 시간 즈음이면 주변 직장인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릴 수 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11시 30분이 되니 손님들이 쉴틈없이 밀려온다. 일행이 다 도착하여 테이블에 앉았다. 5명이 각각 물냉면 한 그릇씩과 녹두전 2개를 시켰다. 물냉면 값이 그릇당 14000원이고 녹두전은 11,000원이다. 무슨 냉면 한 그릇 가격이 14000원이나 하는가? 생각이 들수 있지만 서울에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스파게티나 파스타 한 그릇에 16000원-20000원 정도 받는 것을 보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을밀대 평양냉면은 한우로 10시간 동안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냉면을 시킬 때 ‘양많이’ 달라고 이야기하면 같은 가격에 곱빼기로 준다. 아는 사람만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고 나중에 사리를 추가시키면 8000원을 더 받는다. 그러니 성인 남자들은 ‘양많이’로 주문해야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수육은 大자는 80,000원, 小자는 40,000원인데 가격대비 양이 적은 듯하여 주문하지 않았다.
먼저 따뜻한 육수를 가져다주었다. 전혀 양념이 되지 않은 밋밋한 맛의 육수다. 주문한지 1-2분도 안되어 나온 녹두전은. 한눈에 보기에도 노릇하니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사이즈가 작긴 했지만 고기가 많이 들어있었다. 파와 고춧가루가 담긴 종지에 간장을 넣어 섞어준 양념장에 찍어서 먹는다. 겉은 바삭, 속은 녹두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있었다.
곧이어 냉면이 나왔다. 육수와 메밀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정말 슴슴해서 아무 맛도 안나는 평양냉면육수맛을 기대했지만 “어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주 밋밋하지는 않았고, 깊고 시원한 맛이었다. 절반쯤 먹었을 때 식초와 겨자와 간장을 조금 넣어서 먹으니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평양냉면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에 급한 면치기는 하지 않았다.
을밀대냉면은 면발의 질감을 높이기 위해 메밀함량 50-60%에 감자녹말과 백반(명반)가루가 적당히 섞여 있다. 그래서 면발이 아주 거칠지 않았고, 뚝뚝 끊어지긴 하지만 탄력이 있으면서 은근히 구수한 맛이 났다. 고명은 배, 고기, 오이채, 절인무, 삶은 달걀 5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음식의 재료는 모두 국내산이다. 5명 모두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을밀대의 창업자는 고 김인주(1936-2005)씨이다. 1936년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이전에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이주한 실향민이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준 냉면을 먹어본 뒤 그 맛에 매료되어 ‘냉면 만들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부산의 냉면집을 돌아다니며 냉면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18세에 마음껏 냉면을 먹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대구의 냉면집 ‘원산면옥’에 ‘시다바리’로 취직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어깨 너머로 냉면사리를 뽑고 육수 만드는 등의 일을 익혔다. 이후 1971년에 아내와 자식들을 대구에 남겨놓고 혼자 상경하여 서울 응암동 대림시장 안에 분식점을 내어 냉면을 팔았다. 냉면매니아가 냉면집을 차린 격이다. 냉면집이지만 분식집으로 신고한 이유는 분식점으로 신고해야 일반식당보다 세금을 덜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6년 현재 위치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가정집을 개조해서 ‘염리분식’이란 상호명으로 장사하다가 몇 해 후에 을밀대분식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을밀대는 부벽루와 더불어 평양의 대표적 명승지로 평양의 금수산 을밀봉 아래에 위치한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세워진 정자의 이름이다. ‘평양냉면집 을밀대’는 김인주가 동업한 평안도 고향 친구와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이다.
지병으로 폐암이 있었던 그는 2005년 8월에 6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냉면인생을 마감했다. 그에게 냉면은 ‘일(一)육수, 이(二)면발’이다. 생전에 냉면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는 “평양냉면 맛은 육수가 결정한다. 양념 맛이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 고깃국물 안에 은근히 깊게 배어 있어야 제맛이 나고 뒷맛도 깔끔하다”고 가르쳤다. 그가 중요시 여기던 육수에 대한 철학이다. 사골과 사태 등 국물을 내는 뼈와 고기는 반드시 수놈 한우를 쓴다는 것도 그의 철칙이었다. 맛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돈만 번다는 것은 그의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을밀대는 체인이 많지 않다. 업소가 늘어나면 맛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날 병원으로 실려 가기 전날까지 손수 육수를 만들었고, 병실에서도 ‘육수가 얼마 남지 않아서 육수 만들러 가야 한다’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장남인 김영길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냉면에 관한 한 ‘외골수’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히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냉면을 많이 파는 것보다 자신만의 육수 맛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후에 번창하게 되었다. 을밀대 냉면맛의 비결은 정직함이라고 했다. 정직한 마음과 정직한 재료를 가지고 정직하게 만들어 대접할 때 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않고 찾아온다고 했다.
철저한 장인정신, 음식에 대한 확고한 철학, 정직한 외골수, 한결같은 성실함, 등 작고한 평양냉면 장인에게 오늘도 한수 배웠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