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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2-07-15 00:13
   
선물로 날아온 문서철(綴)
 글쓴이 : dangdang
조회 : 6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40 [134]


선물로 날아온 문서철(綴)

 

얼마 전에 친구에게 오래된 문서철 한 권을 받았습니다. 내 사무실에 들른 친구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이건 자네에게 주는 선물일세’ 하고 문서철을 내놓았습니다. 1970~8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검은색 종이 하드커버에 검은색 노끈을 묶어서 마무리를 한 문서철입니다. 폐기되는 문서 더미에서 건져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렇게 바래서 넘기기조차 조심스러운 오래된 문서철을 손에 쥐는 순간, 이 특별한 느낌은 뭐지 하며 예사롭지 않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문서철 앞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뒷장에 흰색 잉크로 <1978 수사지휘부 35*호실>라고 쓴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겉장을 넘기니 ‘사건기록목록’이라는 서류 일람표가 나옵니다. 손을 재게 놀려 묶어진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류의 제목은 “공소장 및 불기소·기소중지사건기록”이었습니다. 문서 생산자는 서울지방검찰청 성북지청이었고요. 사건기록에는 절도, 업무상과실치상, 식품법, 축산물가공처리법, 향군법, 상해, 폭력, 간통, 사기 등 다양한 죄목과 사건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검사의 처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건기록과 처분등을 읽으면서 친구가 선물이라며 생색을 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무미건조한 사건기록이지만 행간에는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고도 구체적으로 녹아있었습니다. 게다가 비록 40년 전 이긴 해도 내가 사는 지역 사람들의 탄식과 아픔은 물론이고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이 가져온 엄중한 처분을 기록한 삶의 보고서를 읽는 기분은 특별했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하였던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고 해야 할까요. 속으로 ‘이건 보물창고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흥미롭게도 공소장 기록과 불기소 처분 기록의 문장은 확연하게 온도가 달랐습니다. 공소장은 법률에 의거해서 엄숙하고 냉정한 문장이 사용된 데 반해, 불기소 처분 기록은 인정이 철철 넘치고, 따스한 인간미를 매우 강조하여 법이 본래 인간을 위해 제정된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불기소 처분 기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훈훈한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기소유예 처분을 기록한 글입니다.

“피의자는 1980, 7. 1. 00:00시경. 서울 동대문구 00동 000번지 앞길에서 피해자 000가 세워놓은 동인 소유의 중고 신사용 자전거 1대 시가 3만 원 상당을 타고 절취한 것이다 라는 바, 수사한 결과 위 사실은 인정되나 본건은 사건이 비교적 경미하고, 피해가 회복되었을 뿐더러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고, 피의자는 평소 외부에 보도부럭을 깔러 다니는 일이 있어 자전거가 필요하였으나 돈이 없어 사지 못하던 중 주인이 지키고 있지 않는 이건 자전거를 보고 우발적으로 본 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고 초범으로 평소 월수입 10만 원 중 5만 원을 고향에 있는 동생 학비로 송금하는 착실한 사람으로서 이번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어 개전의 정이 현저한 점등 정상에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으므로 장래를 엄히 훈계한 후에 이번에 한하여 이건 소추를 유예함이 상당한 것으로 생각되어, 이에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어떻습니까. 기소유예 처분 기록을 보니 참 따뜻하지요? 이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기소유예 처분 기록에 언급되는 단어들과 짧은 묘사들입니다. ‘1980. 7.1.’, ‘00동 000번지 앞길’, ‘중고 자전거 시가 3만 원 상당’, ‘보도부록을 깔러 다니는 일’, ‘월수입 10만 원 중 5만 원을 고향에 있는 동생 학비로 송금하는 착실한 사람’... 이 구절들은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를 복원시켜 줍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범죄를 구성하는 실증적 서술의 힘이 더해져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거창하게 ‘미시사’(microstoria)를 말하지 않아도 문득 검사의 처분 기록을 가지고도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흥미로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50여 건쯤 되는 검사의 처분 기록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법률적으로 내리는 인간에 대한 긍정의 처분이라는 것. 그리고 검사의 공소 처분 역시 법률 집행이라는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이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을 긍정하는 처분이라는 것이지요. 이걸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토대가 그래도 든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의 토대가 더 든든해지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으로 잘살고 있는지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요.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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