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30년 동안 1,550차례나 열린 위안부 수요시위 이야기입니다. 정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입니다. 이 슬픈 시위에는 전쟁 범죄에 대한 분노가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를 폭발하게 만드는 터무니없는 일이 멀리 독일에서 벌어졌습니다. 지난 26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한국과 일본의 극우 인사 4명이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이들은 “위안부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야말로 왜곡된 역사관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인 증언을 기억할 것입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경험’을 최초로 증언한 분으로 동대문교회 권사님이기도 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생생했습니다. 17살에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시작한 과정과 거기에서 일어났던 처절한 아픔이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증언으로 아무도 말하지 못하였던 우리 사회의 깊은 아픔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동시에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직적인 범죄였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습니다. 그의 증언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일본과 국내 우익단체는 즉각 ‘증거를 대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그들을 향해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며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은 국내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필리핀,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일본군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위안부 수요시위가 시작되었고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이하면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그사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반인권적인 전쟁 범죄로 규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미국 하원은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네덜란드 하원과 캐나다 하원 역시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유럽의회도 위안부 결의안을, 2008년에는 필리핀 하원이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보고서를 채택하여 일본은 사죄와 보상으로 피해자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함을 촉구하였습니다. 2018년 대한민국은 8월 14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국가 기념일 지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극우 세력과 손을 잡은 일부 국내 극우단체들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베를린 소녀상 시위에 참여한 ‘낙성대 경제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위원이 대표 격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2019년 7월, <군함도의 진실>이란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맡았습니다. 이 심포지엄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이사회가 개최되는 시점에 맞추어 열린 자리였습니다. 일본이 군함도에 강제 동원을 하지 않았다는 자기변명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요. 여기에서 이 연구원은 “과거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갔으며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은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제의 강제 징용을 부정한 것입니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대한민국 학자가 앞장서서 대변해 주었으니 일본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지난 6월 26일 베를린에서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며 ‘위안부는 역사 왜곡’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편 인물이 바로 동일 인물입니다.
이처럼 명백한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상식과 건강함을 깔보기 때문입니다. 두렵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사회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한국 극우 인사들의 시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 눈물까지 지었다고 하지요. ‘반 나치 법’이 있는 독일은 헌법에 나치를 부정하는 조항을 둔 것은 물론이고, 헌법에 반하는 나치의 상징을 사용하거나 나치를 선전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친일찬양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일찬양금지법’은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는 자를 처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2020년 국회의원 후보자의 97.8%가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실제적인 연구는 물론이고 발굴한 이야기를 우리 사회가 보존하고 자녀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강제 동원된 위안부 피해자가 약 20만 명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시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위안부 처녀공출’을 피하려고 서둘러 조혼을 했던 수많은 여인의 삶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 또한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았을까요? 이들의 이야기도 찾아내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미 찾아낸 이야기가 어디엔가 상당하게 쌓여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시급하게 찾아내야 할 이야기들 역시 상당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단 몇 개의 이야기라도 살려내서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를 이야기의 숲이라고 하는데, 한국 교회가 혹시 이 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침내 숨어 있는 이야기가 살아날 때 우리 사회는 맹목적인 역사숭배에서 벗어나 당당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