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보리수와 슈베르트의 보리수
우리 교회 최고 연장자이신 천권사님댁에 심방을 갔다. 심방때 젊은 성도들의 가정방문과 차이가 나는 것은 심방대접으로 나오는 음식들이다. 이날 등장한 과일은 보리수열매다. 정확히 말하면 설탕에 재놓은 보리수열매효소이다. 내 나이 50이 다 되도록 처음 먹어본 열매이다. 원래 잘 익지 않은 보리수열매의 맛은 시큼 떨떠름한데 빨갛게 잘 익은 보리수열매를 설탕에 재워놓아서 달달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보리수나무를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도농복합지역인 이천에 7년 동안 사는 나 조차 보리수 열매는 처음 접해본다. 보리수나무도 보긴 했겠지만 보고도 잘 모르니 지나쳤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불교와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가 6년간 고행을 했음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보리수나무 밑에서 명상에 들어 일주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나무이다. 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했을까? 큰 나무 아래 앉아있으면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산소를 내보내며 숨을 쉬기에 당시 인도의 큰 보리수나무 아래가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우리가 떠올리는 석가모니의 보리수나무는 우리가 접하는 우리나라 보리수나무와는 전혀 다른 품종이다. 인도보리수는 뽕나무 과에 속하는 인도무화과 중에 한 종류로 나무 높이는 10~20m에 달하며 인도가 원산지인만큼 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파키스탄에서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넓디넓은 인도아시아대륙에 분포하는 이 나무는 그런 까닭에 불교는 물론 힌두교와 자이나교도들 모두에게 신성시된다. 그래서 그 나라들에서 ‘보리수를 찾아간다’는 말은 기도하려 사원에 간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아열대 기후인 인도 원산의 보리수가 우리나라에서 살수 없는 나무들인데 전국에 걸쳐 산과 들에 보리수라고 칭해지는 나무가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보리수나무라 불리는 나무는 피나무(달피나무)이다. 왜 피나무가 보리수나무로 불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이 땅에 불교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듯하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는 상징성은 인도 불교는 물론 중국 불교와 우리나라의 불교에서도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인도보리수가 우리 지형에서 잘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니 대안으로 제시된 유사한 나무가 피나무였던 것이다. 까맣고 단단한 열매를 맺어 염주를 만들 수 있는 피나무의 이파리도 인도보리수와 비슷해 이미지를 빌려 오는데 충분했을 듯싶다.
알아보니 보리수열매에는 천식에 효과가 있다. 기침과 천식에 좋은 탄닌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소염작용을 해주기에 적당량을 장복하면 기관지염증과 기침, 천식에 효과가 있다. 만성적인 기관지염과 가래로 헛기침이 잦은 이들이 섭취하면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보리수나무에 함유되어 있는 니아신 성분은 혈관을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해주므로 몸속의 혈류가 원활하게 흐르도록 도움을 주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켜주므로 혈전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과 동맥경화 같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외에도 보리수열매는 남성들의 기력회복과 스테미너에 좋고, 여성들의 생리불순, 월경과다일 경우 생리의 양을 조절해 주는 효과와 산후 부종에도 좋다. 잘 익은 보리수 열매의 붉은 빛깔에는 라이코펜이라는 색소가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노화예방을 해주고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황산화작용을 해 준다. 베타카로틴 성분도 들어있어 피부를 촉촉하게 해주고 탄력적으로 만들어 주며 시력에도 좋은 음식이다. 이 외에도 설사, 변비에도 효과가 있다.
석가모니의 보리수 말고 또 유명한 보리수는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이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는 인도 보리수가 아닌 유럽 피나무이다. 우리가 접하는 보리수열매의 그 나무를 주제로 만든 것이다. 슈베르트는 가난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다가 ‘겨울 나그네’ 연가곡을 완성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24개의 연가곡 중에서 5번째 곡인 ‘보리수’는 겨울나그네 중 가장 유명한 민요풍의 노래로 폭풍의 효과, 나뭇잎의 움직임 등을 묘사한 피아노 반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특히 '겨울 나그네'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내용으로 전개 되지만 그중에서 '보리수'는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잠간이지만 푸른 가지마다 예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풍성한 보리수를 생각나게 하여 쓸쓸한 느낌 가운데 다소나마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보리수열매를 접하긴 힘들지라도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한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