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
여름은 유월에 시작한다. 통계상 하루 평균 기온 20도 이상을 여름이라고 한다면, 문득 여름이 조금 더 빨라졌음을 실감한다. 현재 여름일수는 100년 전과 비교해 평균 94일에서 132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기상학에서는 일 평균 5도 이상 올라가 떨어지지 않는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본다. 반대로 일 평균 5도 이하로 내려가 올라가지 않으면 겨울의 시작이다.
요즘 드는 마음은 어려서 익힌 기후공식이 부디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아직 오월은 봄이어야 하고, 유월부터 여름이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추억의 노랫말을 더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고향 노래는 “꽃 피는 봄 사월”이 어울리고, 그리움은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이 바람에 날린다고 해야 적절하다. 옛 할머니들의 “하얀 부추꽃이 필 때부터 가을”이란 믿음은 진리에 속한다.
독일의 정원사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1874-1970)는 계절을 일곱으로 구분하였다.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이다. 그는 여름을 세분하여 초여름은 6월 초부터 6월 말까지, 한여름은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을은 8월 말부터 시작한다. 계절은 경계가 옅어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푀르스터의 분류는 유럽의 경우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사계가 뚜렷한 한반도는 그 경계가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그러나 기준은 종종 변한다. 언제부터인가 봄을 알리는 전령이 개나리에서 벚꽃으로 바뀌었다. 개나리는 점점 설 땅을 잃고 최근 전국 어디서나 벚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해안부터 휴전선에 이르는 벚꽃 개화에 따른 등고선은 현재 봄이 오는 시기를 알리는 예고편이 되었다. 그런데 남해안의 진해 군항제와 여의도 윤중로 벚꽃 구경에서 시차가 사라진 요즘, ‘벚꽃 피는 순서’라는 관용구조차 사라질 전망이다. 온 나라 벚꽃이 한꺼번에 피기 때문이다.
양봉농가는 몇 년째 시름에 잠겨 있다. 겨울나기를 하던 벌들이 사라진 때문이다. 꿀을 채취해온 양봉농가들을 실망 시킨 것은 흩어진 벌들만이 아니다. 봄이 혼란스러워지면서 번번이 꿀을 채취할 기회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아카시 꽃이 피는 순서에 따라 꿀벌통을 옮기며 남녘에서 DMZ근처까지 북상하던 양봉농부의 봄볕 순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5월의 향기로 불리는 아카시 꽃 또한 벚꽃처럼 일제히 피고 또 지기 때문이다. 아카시 꽃은 가장 중요한 밀원(蜜源)이다.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들은 아직도 ‘제비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북방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제비 나라’는 남쪽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은 모국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봄이면 강남에서 돌아온다는 제비를 한반도의 낮은 하늘에서 찾아보기는 아주 드믄 일이 되었다.
예로부터 늦은 봄에는 비가 귀하여 가물이 깊다. 찔레꽃이 피는 즈음은 어김없이 가뭄이 들었다. 한창 모내기 철인데 비가 오지 않으니 농부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오죽하면 찔레꽃이 피는 모내기 철에 드는 가뭄을 ‘찔레꽃 가뭄’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올해 5월과 6월은 평년에 비해 강수량이 절반도 미치지 못해, 초여름 무더위를 일찍 체감 중이다. 매일 시름시름 생기를 잃어가는 대기를 보면서 단비 소식을 담은 기상예보를 기다리는 마음은 도시 언저리에 산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
매일의 날씨를 기상(氣象)이라고 부른다면, 더 크고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기상 현상을 기후(氣候)라고 한다. 흔히 기상을 기분, 기후는 성격으로 비유한다. 한때의 기상이 변덕스러운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성격으로 굳어진 기후는 위협적이다. 봄이 일찍 찾아오는 원인인 지구온난화 현상은 이제 견고한 상식이 되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지구공동체가 맞은 다섯 가지 위기 중 첫 손에 꼽힌다. 당장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온도 상승을 1.5도로 저지하는 목표는 모든 나라가 지구적 차원에서 공동 대응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대표적 특징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계를 유지하는 금수강산은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가? ‘새로 보는’ 봄, ‘열매를 맺으니’ 여름, ‘갈아 입어’ 가을 그리고 ‘겨우 살아서’ 겨울이란 사계절을 지켜낼 엄숙한 숙명은 마치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가 변함없듯이 엄연한 진리에 속한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