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여 응답하라!
지난 15일 기독교회관에서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한국기독교 농촌목회자연대회의’(농목연대)와 ‘교회협(NCCK) 생명윤리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입니다. 2014년 쌀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개방이란 비상상황을 앞두고 열린 자리였지요. 이 자리에서 조언정 목사는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기독교운동본부’의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반적 반응이 그러하듯 교회의 반응 역시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응답이 없습니다.
12년 전인 2002년도에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쌀 수입 개방 압력을 기도로 지키고자 시작한 운동이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발하여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를 거쳐 서울에 입성을 한 순례단은 장장 105일 동안 전 국토 2천km를 걸어왔습니다. 당시 우리쌀 지키기 100일 걷기 기도운동을 이끌었던 농부 김재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방의 소읍과 도시를 지날 때는 뜨거운 호응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 있구나’, 마음이 뿌듯했지요. 그런데 정작 서울로 가까이 올수록 생각했던 것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서울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세울 것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쳐든 깃발은 주목하지 않습니다. 식량주권이란 가장 시급한 문제를 외쳐대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무심한 사람들 속에 끼여 있는 한국교회의 덩치 큰 모습이 선명히 보입니다. 왜 이처럼 무심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삶이 너무도 바쁘고 분주한 때문일 터이고, 교회는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선교적 과제를 수행하느라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농촌과 농업, 식량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생명을 성찰하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전통적인 교회론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보면 이는 교회에 대한 반쪽 정의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하나일 뿐 아니라 다양하며, 거룩할 뿐 아니라 은사적입니다. 보편적일 뿐 아니라 지역적이고, 사도적일 뿐 아니라 예언자적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8개의 표지는 최종적으로 죽음의 가치관과 맞서 생명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로 묶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통방법은 실행(action)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새로운 인류, 생명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을 전하시려는 하나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교회는 지배적인 세상 문화에 반하는 하나님의 대항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의 초점은 여기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 논리에 따르면 쌀과 식량은 단순한 상품에 불과합니다.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시장이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게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쌀과 식량은 우리 민족 공동체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이걸 지키지 못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응답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세월호 사건 자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이 작은 외침에 응답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세상이 갖지 못한 거룩한 일을 힘써 수행하는 참 생명의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