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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2-06-03 00:44
   
성삼재와 노고단 사이에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69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27 [147]

 

성삼재와 노고단 사이에서 

 

친구 부부와 함께 몇십 년 만에 지리산 노고단을 찾았습니다.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지리산은 참 장하였습니다. 나뭇잎들은 바람이 불어오기만 하면 짙은 녹음 속으로 햇살이 스며들 수 있도록 길을 내며 출렁였지요. 그 지혜가 오묘했습니다. 지리산은 싫증 난 일상을 다시 시작해 보라는 듯 내 눈앞으로 사방 수백 리를 펼쳐 보입니다. 의연함이 보이냐고, 손 내밀어 잡아 보라고 말없이 속삭입니다. 연신 참 좋구나, 아름답구나, 외쳤습니다. 

 

그런 지리산을 차를 타고 화엄사에서 높이 1,102m인 성삼재까지 30분 만에 올라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태연히 경험한 것이지요. 주차장도 얼마나 널찍하던지, 더 이상 40년 전에 화엄사 가파른 계곡 길을 통해 헉헉대며 올라오던 노고단이 아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1,507m의 노고단 정상이 손에 잡힐 듯이 서 있습니다.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편안한 산책길 같았습니다.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평상도 놓여 있었고요. 길옆으로는 고사리며, 참나물, 취나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여느 야트막한 산에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고단 가는 길은 완만하긴 해도 만만치 않은 긴 오르막이었습니다.

 

한 시간쯤 오르다 보니 무넹기 전망대가 나왔습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등산하다 보면 마침내 만나는 평탄한 능선길.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고생 끝이라며 룰루랄라 노래가 절로 나오는 바로 무넹기입니다. 무넹기에서는 신비로운 운해(雲海)를 기대한다 했지만, 우리가 간 날은 초여름의 맑고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화엄사와 구례읍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런 날씨였지요.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몇 모금 물을 마시고 다시 노고단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노고단이 1km쯤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여전히 즐겁고 행복한 산행길이었는데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분은 곧 증상이 되었고,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당이 떨어졌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호텔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빵 몇 조각과 커피를 마시고 올라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당이 떨어진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수록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당이 떨어져서 에너지에 민감해지는 내 몸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약한 몸을 질책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되뇌었던 것이지요.

 

그런 내게 노고단 대피소가 바로 앞이라는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젠 살았구나, 대피소에만 가면 매점에서 초콜릿이나 컵라면 같은 음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하지만 당도한 대피소에는 원하는 게 없었습니다. 공사중! 낙심천만했지요.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속에서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친구 부부를 향해서는 엉뚱한 말이 호기롭게 튀어나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노고단 정상에 올라가야지, 그냥 갈 수 있느냐며 올라가자고 말이지요. 친구가 말합니다. 그래, 올라가자고! 그런데 몇 계단 오르다가 말고, 아니야, 시간이 많이 흘렀네. 지금 내려가도 점심시간이 꽤 늦는다며 성삼재로 얼른 내려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못 이기는 체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막상 발걸음을 돌리니 성삼재까지 내려갈 수 있을지 덜컥 걱정됩니다. 몸이 생각보다 훨씬 지쳤던 것이지요. 초코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물병에 조금 남았던 물까지 다 마시고 앞만 보고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일행이 뒤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지루하고 기나긴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번 두 번, 거듭해서 부르는 소리에 멈춰서 보니 아내가 사탕 세 알을 손에 쥐고 달려왔습니다. 올라가는 중년 부부에게 사탕 좀 있느냐고 부탁해서 얻은 사탕을 쥐고 달려온 것입니다. 사탕 두 개를 입에 넣고 깨뜨리고, 녹이면서 먹었습니다. 나머지 한 개도 마저 까서 입에 넣었지요. 신기하게도 금방 몸에 기운이 생겼습니다. 걸을 만 해졌지요. 마침내 성삼재 주차장에 당도하여 빵과 물을 얼마나 맛있고 달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사탕 세 알은 꼭 주차장에 내려올 만큼의 에너지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아내가 건네준 사탕 세 알이 말도 안 되는 몸의 허약함에서 나를 구원해서 말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속 깊은 친구의 배려와 가던 길을 멈추어서 기꺼이 사탕을 꺼내준 이름 모를 부부의 친절 또한 큰 몫을 한 것도 기억합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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