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사를 바꾸라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2006년 발간 ‘21세기 찬송가’)에는 부활 찬송이 15곡이 있다. 그 중에 ‘사망의 권세가’(169장)는 배경이 남다르다. 원래 아프리카 응고니(Angoni) 족의 전투노래였는데, 말라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토마스 콜빈이 그 곡조에 부활의 승리에 대한 가사를 붙인 것이다.
이 찬송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문제 삼은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쓰였던 노래가 과연 부활찬송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라는 주장이었다. 자연스러운 문제제기다. 물론 이 노래는 더 이상 전쟁을 위해 부르지 않으며,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찬송으로 바뀌었다. 이런 개사 방식을 ‘콘트라확투어’(Kontrafaktur)라고 부른다.
가장 경이로운 콘트라확투어는 부활 사건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대전환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부활절 50일 중에서 40일째 되는 날은 승천일로, 여섯 번째 목요일이다. 이를 기념하여 일곱 번째 주일은 승천주일로 지킨다. 부활 후 지상에 머무신 40일 동안 ‘빠스카의 초’를 밝힌다. 두 개의 촛불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희망의 출애굽을 이끈다.
예루살렘 감람(올리브)산에 예수승천교회가 있다. 예배당 돌바닥 표면에는 일부러 발자국을 남긴 듯한 흔적이 있다. 마치 그 바닥을 디딤돌 삼아 공중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포착한 모양처럼 보인다. 그 위 천정은 본래 하늘이 보이도록 열려 있었다는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 뚫린 지붕을 무거운 덮개로 씌웠다고 한다. 유대교든, 이슬람이든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인간의 영적 시선을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까지 넓혀 주었다. 한 마디로 땅의 사람들에게 하늘의 차원을 열어주신 일이다. 좁은 인간의 시야를 하나님의 현실 안으로, 불안정한 존재의 지평을 하나님의 공간까지 확장시킨 사건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된 사람이다. 인생의 곡조에 새 가사를 입힌 은혜의 콘트라확투어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부활과 승천의 증인은 모두 120명이다. 구성원을 살펴보면 그들은 옛 사람과 새 사람, 추종자와 반대자, 남자와 여자, 첫 사랑과 새 증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과거의 잘못과 오해를 다 불문에 부치고, 이젠 복음의 밀알과 성령강림의 불씨로 준비된 사람들이다.
엘살바도르에서 순교한 로메로 대주교가 있다. 그는 순교 당하기 전 마지막 강론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1980년 3월 24일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서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주님이 오시는 그때 완성될 것입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말과 몸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희망을 가르쳐준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그를 따라 새로운 삶,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라틴아메리카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찬송가에는 본래 세속적인 목적으로 만든 노래에다 가사를 바꾼 찬양곡이 여럿이다. 그리스도교 선교가 급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 노래가사 바꾸기는 빈번하였다. 심지어 남의 나라 국가를 개사한 찬송들도 있다. 영국 국가 ‘피난처 있으니’(70장), 독일 국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210장)가 대표적이다. 이전 통일찬송가에 담겼던 ‘전능의 하나님’(77장)은 러시아 국가였다. 놀랍게도 미국연합장로교회(PCUSA) 찬송가 ‘Christ You are the Fullness’(346장)의 곡은 한국민요 아리랑이다
부활신앙은 내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콘트라확투어 하는 일이다. 찬송가의 전곡이 저마다주제는 달라도 모두 부활신앙에 기반한 찬양이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제 각각 달라도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 같은 믿음의 장본인들이다. 그는 노래 가사를 바꾸어 부르듯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부르는 사람들이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