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 만들기
5월 5일 어린이날! 밭에 작물을 심기 딱 좋은 시간이 왔다. 지난 주일 오후 교회 사모님이 올라오셔서 비닐 농막에 미처 털지 못한 작년 가을에 수확한 메주콩을 털어주어 매우 홀가분한 상태가 되었다. 쉬는 날엔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려도 되건만 이상하게 쉬는 날은 더 일찍 눈이 떠진다. 그 바람에 안 먹던 아침도 챙겨 먹고, 밭으로 향했다. 집 뒤의 너른 밭엔 작년처럼 메주콩을 심을 예정이다. 거의 500평 정도 되는데 작년엔 그 밭에다가 아래쪽엔 고추와 토마토, 상추 등을 심었고, 위쪽 오른쪽엔 참깨를 심었다. 그리고 나머지 300평 되는 곳에는 콩을 심었었다. 올해는 계획을 조금 바꿨다. 300평으로는 콩 수확이 미더웠다. 평당 1킬로씩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였는데 나는 그 평균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 농사를 지었다. 너무 가깝게 심었던 것이 콩이 자라는데 영향을 준 것 같아 올해는 심는 평수도 넓히고 심는 간격도 전문적인 농부들처럼 널찍하게 간격을 두고 심기로 했다. 그야말로 개봉박두 전이다.
지난 목요일 어린이날에는 비닐하우스 200평 되는 곳을 작업했다. 이것도 교회 목사님이 올라오셔서 깨끗이 갈아주었다. 서너번 갈고 나니 흙은 곱고 부드러웠다. 깨끗이 갈아놓은 밭 위에 냥이들은 자기네 안방인 양 누워 모래 찜질을 하고, 어떤 녀석은 이때다 싶은지 달려가서 기분좋게 용변을 보고 있었다. 내 눈치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두둑을 만들 차례다. 대충 가늠을 하니 60센티 간격으로 다섯 이랑이 나올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랑을 좁고 높게 만들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비효율적인 동시에 힘만 들것 같았다. 그래서 넓게 만들기로 했다. 마침 비닐도 넓은 것이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먼저 200미터 거리를 눈 대중으로 줄을 그었다. 0에서 출발하여 200까지 가늠을 한 다음 발을 끌고 갔다. 가다가 중간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혹 줄을 잘못 긋고 있지는 않은지, 줄이 한쪽으로 치우쳐 그리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나의 눈과 감이 잘 맞아떨어져 흔들림없이 주욱 선을 만들어 갔다. 매우 원시적인 방법인 듯 보이지만 트랙터나 관리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다. 다행히 흙이 잘 갈려서 이 또한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하나의 두둑이 만들어지면 비닐을 덮었다. 비닐 씌우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편의점에 가면 야외에 놓인 알록달록한 원색의 파라솔 의자가 있다. 그 의자 두 개면 혼자서도 비닐 씌우는 것은 껌이다. 맨 앞쪽에 의자 두 개를 놓고 그곳에 두루마리 비닐을 쇠막대기에 끼어 올려놓는다. 그런 뒤 비닐을 200미터 목적지까지 끌고 간다. 거기서부터 흙을 덮어 원점으로 돌아오면 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시작점부터 마지막점까지 순차적으로 흙을 덮을 수 있지만 혹여 바람이 부는 날이면 시작점을 흙으로 단단히 고정을 시킨다음 중간 중간 흙으로 붙잡아주면 된다. 그렇게 하고 다시 0부터 200미터까지 줄을 그으며 낮은 두둑을 만든 뒤 비닐을 씌웠다. 모두 다섯 번을 하였다. 200미터가 5개였으니 총 1000미터의 길이를 튼튼한 두 다리로 트랙터의 두둑기 못지 않은 두둑을 만들어내었다. 다섯 두둑을 모두 끝내고 나니 흐믓했다. 멀리서 바라봐도 흐트러짐 없이 잘 만들었다. 마음 같아선 500평 되는 콩밭도 그렇게 만들다 보면 만들 수 있다고 잠시 정신 나간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콩을 심는 때는 두둑기가 딸린 트랙터를 빌릴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이던가.
인간 승리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는 말이 맞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아 어떻게 할까 꽤 고민을 하였는데 막상 문제 앞에 서니 그 문제를 풀 힘이 생겼고 또 실행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혼자라서 하기 힘들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때가 되니 몸은 마음과 다르게 이미 밭으로 가 있었다. 마음은 자꾸 망설였지만 몸은 벌써 삽을 들고 호미를 들고 비닐을 덮고 있었다. 비록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 했지만 나중에는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산을 옮긴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니 오히려 힘들이지 않고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이날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결과 두둑 하나에는 고추를 심을 수 있었고, 다른 두둑에는 참깨를 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참깨는 삼일에 걸쳐 모두 심었고, 중간중간 10여 종류의 쌈채소와 토마토, 가지, 깻잎 등을 심을 수 있었다. 순조로운 농사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순풍이 부니 돛을 올려도 되겠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