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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0]
 
 
 
     
 
 
 
작성일 : 22-05-08 00:24
   
어머니란 유전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75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461 [125]

 

 

 

어머니란 유전자

 

  얼마 전 거리의 신부라고 불리는 문정현 신부(82)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는 봄바람 순례단과 함께 제주 구럼비에서 용산까지 ‘다른 세상을 만드는 40일 순례’를 하는 길이었다. 그 며칠 전에 홍천군청 앞에서 열린 강원 NCC 주관 고난받는 일들과 함께하는 현장예배에서 인사드린 일도 있다. 그날은 고난주간 목요일이었다. 홍천군청 앞에서 499회째 현장기도를 이끌어온 박성율 목사는 모처럼 먼 데서 온 내방객들 때문에 힘을 받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문 신부의 집안은 한국천주교의 성골이다. 무슨 무슨 고위직 서품을 받아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딸과 두 아들은 지극히 평범한 수녀와 본당 신부였지만, 어떤 주교나 추기경 못지않게 어머니의 이름을 자랑스레 드높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문 신부가 유신시절인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되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지학순 주교의 구속에 대해 젊은 신부로서 반발심이 컸다고 하였다. “감히 주교님을 구속하다니!”

 

  첫 면회를 기다리면서 아들 정현은 어떻게 어머니를 만날까 염려했다. 감옥에 갇힌 아들을 보고 오열하여 실신이나 하시면 어쩔까 두려웠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김대건 신부 돼야 해.” 아들은 지레 걱정 근심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참으로 당당하셨다고 회고한다. 순교자 아들을 둘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 어머니들 덕분에 이 나라와 교회가 이만큼 달라진 것이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선배 목사가 은퇴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들었다. 한두 세대 전에 믿음이 좋은 어머니들은 믿음이 좋을수록 여러 아들들 가운데 그중 똑똑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한다. 그렇다고 남을 이기는 출세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자기를 죽이는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가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상시 목사는 험한 세월을 견디며 평생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다. 그 역시 서원의 공을 어머니께로 돌리는 효자였다. 도대체 어머니들에게는 특별한 DNA가 있는 것일까? 

 

  우리 어머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꼭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자전(自傳)글을 비롯해 일기 몇 권과 수십 편의 쪽글들을 남기셨다. 우리 형제자매에게 얼마의 유산보다 더욱 소중한 뜻밖의 유언인 셈이다. 꼬불꼬불 글씨를 보면 지금도 목소리가 들리는 듯, 눈에 선하고 눈부시다. 30쪽으로 요약한 자전글은 비록 45세까지 인생의 절반 분량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축한 것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생애를 다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먼저 외조부모님의 이름과 고향집 주소를 언급한 후, 이렇게 이어간다. “내가 자라난 곳은 뒤에는 수정산이 있어 추석 때는 원삼면 사람들 외사면 사람들 다 올아와 바위에 앚아 노래 부르고 울긋 불긋 꽃받 갇았다.” 아들의 눈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 첫 문장보다 더 명문처럼 느껴졌다. 물론 같은 한글이어도 문해가 쉽지 않고, 거두절미가 많아 전후사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의 말이든 글이든, 사적인 개인사(個人史)든 객적은 미시사(微視史)든 기록 그 자체는 소중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도대체 우리네 여성들은 어떤 고비를 넘고, 과정을 거쳐 어머니로 단련되었는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자라나고 성장하면서 어떻게 소녀가 되고, 엄마가 되고 예배당의 권사님이 되었는지 궁금하였다. 

 

  어머니의 기록 중에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영월중앙교회에 출입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남다른 열심을 내던 중에 속회가 나뉘면서 처음으로 속장을 맡으신 모양이다. “한번은 성탄절이 됏는데 우리 속회에서 떡을 한시루 쩟다 위에다 까망콩을 십자로 놓고 해갔다... 교회서도 덕포 2속이 떡해 왔다고 목사님 장로님들 모든 성도들이 칭찬을 하셨다.” 흰 시루떡 위에 까망콩을 얹어 가로세로 십자 모양을 낸 모습이 놀랍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먹는 음식이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신다. 그렇고 보면 십자가를 자랑하는 내 생각의 DNA에도 어머니의 믿음의 유전자가 오롯이 흐르고 있구나, 싶다. 

 

  비록 마지막 얼마 동안 가끔 기억의 회로가 헝클어졌지만, 미리 써 둔 일기와 자전글 덕분에 어머니의 시간은 생기를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제라도 어머니의 구겨진 자전글일망정 다림질로 깨끗이 펼쳐서 세상에 내놓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전글에 대한 주석을 붙이고, 옛 사진을 발굴해 붙여 <계간 성실문화>에 연재 중인데, 12회 중 겨우 하나 남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모든 자녀와 세대를 이어줄 유일한 모국어와 같다. 그렇게 잇고 또 이어 정상시와 박성율 그리고 문정현 등 모든 아들딸에게 그 어머니의 유전자를 피같이 이어갈 것이 틀림이 없다.​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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