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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9]
 
 
 
     
 
 
 
작성일 : 22-05-01 05:35
   
성님에서 성도님으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78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427 [141]

 

성님에서 성도님으로

 

신현희(안산나눔교회)

 

  거리에서 전도하면서 나는 단순히 전도를 목적으로 점포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전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은 확실히 믿는 바다. 다만 손님 하나 들어오지 않는 오후, 가게 주인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 가게나 식당의 주인이 문 밖에 나와 있을 때다. 주저 없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들고 있던 비타민 물티슈라도 하나 주면서 “안녕하세요? 복된 하루 되십시오. 예수님 믿으세요!” 그렇게 만난 사람이 하루, 이틀, 열 번이 되고, 1년이 지나면 굳이 그 가게의 단골손님이 아니어도, 지나가며 만나던 사이라 해도 서로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 10년 동안 만나온 횟집 송○○ 사장님이다. 상투적 대화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면,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불편하고 민감한 문제들도 드러나게 된다. 어린시절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일그러졌던 목사와 교회공동체에 대한 실망, 어머니의 기도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정 문제가 가로막혀있다. 많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목회상담을 전공하시고 언젠가 우리들에게 특강을 해주셨던 선배 목사님의 조언처럼 “꾸나-꾸나-어쩌나(그랬구나, 그랬구나, 아이고 어쩌나, 동의 후 크게 공감)”가 만병통치약일 때가 많다. 뾰족한 수가 없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실망한 마음을 털어놓는 푸념도 한없이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한 번은 송사장님이 새벽까지 식당 영업을 마치고 같이 일하는 직원과 술을 마시고 새벽기도회에 온 적이 있었다. 마음 기댈 곳 없어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되어 예배당에 도착해보니 새벽기도에 나온 성도들이 술냄새 풍기는 낯선 두 남자의 등장에 놀랐지만 짐짓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인사를 하고 강단으로 향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뒷자리에 앉아 기도회가 끝나고 성도들이 돌아갈 때까지 잠자코 있어줘서 내심 고마웠다. 애찬실에서 목사가 타주는 커피 한 잔 받고 이야기를 좀 하다 돌아간 것이 교회에 첫 발을 내디딘 사건이다.

 

  그 이후로 저녁 장사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서너 시가 되면 간혹 연락이 왔다. “목사님! 교회 가시면서 가게 잠깐 들러주시면 안됩니까? 시골에서 김치를 좀 가지고 왔는데요...” “햅쌀이 와서 좀 드리고 싶습니다.” “지인이 고구마를 보내왔는데...” 교회와 교우들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알기에 나도 번번이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서 들고 갔다. “제가 축복기도 해 드려도 될까요?” 누구든 복을 빌어주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사람은 많지 않다. 받은 것을 앞에 두고 감사 기도를 했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이르든 더디든 결국 허무와 죽음으로 마무리 될 인간의 삶 끝에 생명과 소망을 주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도 중에 전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잠깐 서먹해지는 기분도 느꼈지만, 나로서는 전도자가 마땅히 전할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쉬는 날도 없이 늘 그 자리에 있던 송사장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감염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격랑 속에서 10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 경영난도 있었고,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느라 너무 지친 모양이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전화 연락을 해서 근황도 묻고 차담을 나누었다. 호칭 변경 요청이 있었다.

  “목사님! 그 ‘사장’ 이제 좀 떼 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면 뭐라고 부르죠?”

  “송 성님 해주시면...”

 

 성님. 형님을 전라도 사투리로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내게는 10년 손위 연배인지라 부르는 사람이 아무리 격식 없이 부른다 해도 도에 지나치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평소 겸손한 그분의 성품에 비출 때, 걸맞는 명칭이었다.

 

  “송 성님 좋네요.”

 

  감염병 확산 상황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인사와 함께 ‘성님’을 교회로 초대했다. 좋다 싫다는 말도 없이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불쑥 교회 현관에 찾아왔고 맞이했다. 예배를 마치고 별 말없이 떠나가기에 예의상 한번 출석인가 했더니 매주 빠짐이 없다. 석 달 동안 매주일 예배에 참석, 예상을 깨고 사순절 기간에 시행한 4주간의 세례교육에 동참한 뒤, 부활절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성금요일 밤 전화연락으로 감염병 확진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이 남아있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마음이 앞서 세례를 받으려하니 막히는 것인가’ 스스로 묻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매년 부활주일에만 세례를 주던 교회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되었다. 병상세례나 빌립을 통해 세례를 받았던 에디오피아 국고 맡은 내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세례가 꼭 시간과 장소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활주일에 세례 받았던 이들과 별개로 그 다음 주에 이어서 세례를 행하였다. 명절에 시댁에 다녀온 딸네가 밤늦게 시골집에 도착하면 그때가 언제든 상을 차려나오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세례식을 연이어 준비했다.

 

  반백 살이 되도록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향과 철학을 바꾸는 일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장님이 성님이 되고, 이어 세례받은 성도님이 되었다. 기도하면서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져주셨다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세례식 도중 ‘믿음의 고백’시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은 벽과 같이 제게 넘어가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잡아서 나를 당겨주지 않으면 넘기 어려웠기에 그저 바라보거나 외면할 뿐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던 차에 목사님의 초청을 듣고, 자리라도 하나 채우겠다는 생각에 교회로 향했습니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무엇에 이끌린 듯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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