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메이커》 (The Miracle Maker, 2000)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애니메이션 영화라면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만화영화라고 단정 짓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에 대한 훌륭한 영화 하나를 놓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바로 2000년에 제작된 《미라클 메이커》라는 영화를. 애니메이션 영화 《미라클 메이커》는 흔히 보는 2차원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점토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하여 만든 3차원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또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미라클 메이커》는 주로 3차원 애니메이션이긴 하나 2차원 애니메이션도 적절히 활용한다. 이 영화를 단순한 만화영화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형식과 만듦새의 정교함 때문만이 아니다. 기술적인 측면이외에도 영화는 신학적으로나 성서고고학적 측면에서도 뛰어난 수준을 보여준다.
영화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왜 제사장이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쳤는지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넌지시 들려주기도 하고,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품고 있었던 적개심의 크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광야의 시험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내포하고 있는 유혹의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차원을 창의적인 2D 애니메이션으로 생동감 넘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의 깊이와 더불어 영화는 시대적 배경과 고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역시 보여주는데,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다. 《미라클 메이커》는 영화의 출발이 되는 시간과 장소를 다음과 같이 자막으로 설명한다. “갈릴리 세포리스, 로마 통치 제 90년.” 성경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세포리스는 예수님의 고향이었던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불과 8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당시 갈릴리의 수도였다. 세포리스는 4,000~5,0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던 로마식 극장을 갖춘 전형적인 헬라 도시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다. 하지만 이때 목수는 단순히 나무로 가구 등을 깎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다루는 모든 일에 관계된 장인(匠人)을 뜻한다. 그런 사람이 가장 많이 했을 일은 당연히 건축이었을 것이고, 세포리스는 건축의 일거리가 풍부한 대도시였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삶에서 세포리스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은행과 이자, 감옥 등에 대한 언급 역시 이 대도시에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촌사람’은 아니셨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포리스는 예수께서 태어나신 직후인 서기 6년 열심당의 시초인 갈릴리의 유다(행 5:37)가 로마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일으켰던 근거지이기도 했으며, 실패로 끝난 이 독립운동의 대가로 2,000명이 십자가에 처형된 도시이기도 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도시 세포리스를 《미라클 메이커》는 그 시작으로 삼는다. 이처럼 《미라클 메이커》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회적, 역사적, 종교적 정황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다.
영화는 ‘달리다굼’으로 유명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시점과 함께 진행된다. 영화 속의 예수님은 역동적이고 힘이 넘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호탕하게 웃으시기도 하고, 세례 요한의 죽음 앞에 격하게 우시기도 한다. 생생하게 묘사된 캐릭터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예전에 모세에 대한 뛰어난 애니메이션 영화 《이집트의 왕자》를 만들었던 제작진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의 라이벌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세실 B. 데밀의 전설적인 실사 영화 《십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미라클 메이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뛰어난 실사 영화들과 함께 반드시 나란히 놓여야 할 영화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