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꽃 진달래
완연한 봄입니다. 부활절이 지나서 그런지 이제야 진정한 봄처럼 느껴집니다. 시끌벅적 피었던 길거리 벚꽃들은 한 주 만에 장렬하게 산화했고 아기 살결같이 고운 신록이 온 산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작년 말 서울에 다시 올라온 후 가장 먼저 찾아간 산은 춘삼월 삼각산 진달래 능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능선 동편 볕이 잘 드는 산자락에만 진달래꽃이 펴있었는데 한 달이 지난 이번 주에 다시 찾으니 익숙한 나그네를 정성스레 반기듯 삼각산 진달래는 능선 좌우로 여전히 애틋한 꽃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삼각산 진달래 능선과 그 서편 골짜기 소귀천 계곡 길을 좋아합니다. 그날그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진달래 능선으로 올라가 소귀천으로 내려오거나 소귀천으로 들어가 대동문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려 먹고 진달래 능선으로 내려옵니다. 시간과 체력이 넉넉하면 대동문에서 산성 주 능선을 타기도 하고 입맛에 이끌리어 419 묘지 쪽으로 내려와 육개장을 먹기도 합니다.
진달래 외에 진달래 능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능선을 걷노라면 동편으로는 저 멀리 수락산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동북권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서편으로는 국립공원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삼각산 세 봉우리와 넓고도 깊은 그 자락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고개만 돌리면 그 상극의 세상을 번갈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서 있노라면 신앙과 삶, 무위(無爲)와 유위(有爲)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우리네 인생도 또한 조망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알 수 없지만 산속으로 들어가니 진달래가 지천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진달래는 그 와중에도 거리두기를 잘 지킵니다. 다른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떼 지어 빈틈없는 군락을 이루지 않고 우리 고향마을처럼 오순도순 사이좋게 핍니다.
혹시 ‘고향의 봄’에 등장하는 아기 진달래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작은 진달래 꽃을 생각하셨다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어느 날 진달래 능선에서 만났던 아기 진달래는 10센티미터 정도의 가녀린 줄기 끝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듯 Y자로 가지를 내었고 그 끝에 각각 꽃 한 송이씩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일반 진달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기 진달래는 이 땅의 작은 예수들 보란 듯이 양손 위로 힘차게 커다란 꽃을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무의 세계>의 저자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진달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진달래는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난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이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흙이 된 척박하고 건조한 땅, 소나무마저 이사 가고 내버린 땅을 찾아 산꼭대기로 올라왔다.”
척박한 곳에서 홀로 오래도록 피어나며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는 온통 산을 뒤덮고 있는 진달래는 참으로 우리 민족과 많이 닮았습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릅니다. 우리 민족이 그만큼 좋아한 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유독 우리 시와 노래에는 진달래가 자주 등장합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봄이 오면 (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
시가 참 좋습니다. 우리의 서정성과 봄의 풍류가 잘 깃든 시입니다. 시만 읊어도 봄의 새싹같이 마음 한구석이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작곡가 김동진의 멜로디도 시와 너무 잘 어우러집니다. 특히 저는 이 가곡의 전주 부분이 참 좋습니다. 아래 영상에서 테너 엄정행의 노래를 선택한 것은 전주가 온전히 살려져 있고 봄의 전령과도 같은 호른 소리가 잘 채색된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노래가 전주와 1절, 그리고 후주로 마무리되어 봄의 단상을 여운으로 남겼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1절의 시상이 원래 있었고 시와 노래의 길이를 위해 2절과 3절이 덧붙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봄노래가 있어서 봄이 더욱 좋기만 합니다.
조진호
https://youtu.be/rka42fBVQ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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