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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22-04-17 02:54
   
노오란 부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90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342 [139]

 

노오란 부활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심벌이다. 옷깃에 혹은 가방에 노란 리본을 상장(喪章)처럼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인다. 어느새 8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마음을 모으는 일은 가족이 아닌 한 쉽지 않다. 그래서 4월이 오면 노란 리본을 다시 꺼내 들지만, 며칠을 이어가지 못한다. 더군다나 마음으로 새기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날은 고난주간의 하루였다. 완전히 뒤집힌 세월호에서 구조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방송은 앵무새처럼 골든타임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난 8년 동안 진실을 둘러싼 공적조사 작업은 부모의 찢어진 마음을 기워주기보다는 더욱 골 깊은 생채기만 남겼다. 세월호를 통해 본 우리 사회가 지닌 공감의 창은 시야가 뿌옇기 그지없다. 304명 희생자의 죽음 앞에서 아픔을 다독이지 못하는 사회의 건강도는 중증(重症)처럼 느껴진다. 

  

  지난 8년 내내 부모의 슬픔은 절대적이었다. 어김없이 세월은 흐르지만, 어찌 아이들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를 잊을 수 있을까?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훼방이 있었다. “아직도 그 이야기냐?”며 외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자식을 둔 보통국민은 모두 같은 심정의 부모마음이었을 것이다. 촛불정부가 들어서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유감스럽게 속시원한 해명은 없었다. 이젠 참고 또 참았던 부모들의 가슴앓이가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세월호 사고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고질화된 부조리와 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안영춘은 ‘세월호, 절대적 슬픔과 과학적 진실’(한겨레, 2021.4.9)에서 말한다. “생때같은 304명의 희생이 솔레노이드 밸브라는 한갓 작은 부품의 정비 불량에서 시발했다는 과학적 설명은 또 다른 차원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자아낸다... 세월호 참사는 중고 선박의 선령 제한 완화, 무리한 증개축, 과적, 고박 불량, 평형수 속이기, 무리한 출항 같은 맹목적 이윤 추구와 안전불감증의 파편들이 알레고리처럼 엮인 결과라고 과학은 말한다.”

 

  8년은 세월호를 회고하기엔 짧은 시간이지만, 기억하기에는 너무 먼 시간이다. 비록 가슴마다 노란 리본을 떼어낸 지 오래이나, 어찌 그날의 참람함을 잊을 수 있을까? 몇 해 전에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세월호 상장들을 수집하여 십자가 형태로 꾸몄다. 다양한 크기의 노란 리본, 배지, 샛노란 종이배, 오색풍선을 단 조각배, 가마에서 구워낸 세월호 상징물 등 오브제가 44가지나 되었다. 

 

  김향렬 작가에게 희망의 십자가로 형상화하도록 주문하였다. 모티브는 ‘닻 십자가’이다. 닻은 사나운 바다에서 거센 풍랑이란 억압과 박해를 이기고 소망의 항구로 인도한다는 희망 이미지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히 6:19). ‘닻’ 모양의 십자가 형태는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진 구원의 심벌인데, 로마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의 벽에서도 볼 수 있다. 지극한 슬픔을 지닌 상장들은 네 가지 십자가의 희망으로 거듭났다.

 

  십자가가 품은 노란 흔적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참변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 것이다. ‘닻 십자가’에 담은 무성한 노란 띠들은 애통하는 가족과 나누는 위로와 희망이며, 세상 안에서 이루어야 할 정의와 평화에 대한 의지였다. 세월호의 꿈을 담은 닻 모양의 조형물은 기도와 연대, 다짐과 희망으로 이어가야 할 마음속 십자가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많은 경우 남의 아픔에 대해 아주 냉담하였다. 때론 너무 쉽게 위로한답시고 덤볐다. 그러다 보니 숱한 죽음의 역사를 겪으면서 고통당하는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한 공감과 소통을 잃었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을 놓쳤다. 제주 4.3 희생, 4.19혁명, 4.9 인혁당 희생자 그리고 4.16 세월호 등 수난으로 이어지는 4월의 날들을 보면 위로가 틈입할 날들이 없다. 100년 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4월과 별로 친하지 못하였다.

 

  그동안 권력을 쥔 국가는 기억을 빨리 과거로 만들려 하였다. 또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기억을 미래로 미루는 데 익숙하다. 어떻게 아이들의 흔적, 그 사랑의 자취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 노란 리본은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처럼 약한 이들의 연결표시이고, 서로를 이타심으로 묶어주는 연대심벌이 되었다. 그런 사랑의 힘이 모이고 모여, 쌓이고 쌓여, 절대적 슬픔마저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 것이다. 노란 리본이 새들처럼 날아오를 노오란 부활의 날에.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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