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의 첫 번째 관문, 볍씨 소독!
봄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봄이 찾아오면 농사의 계절도 돌아왔다는 뜻이다. 지난 3월 하순에는 봄감자를 심었다. 나에게도 심어보라고 심고 남은 감자를 주시려는 분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농사짓는 땅은 한쪽은 모래와 돌이 많고 한쪽은 습이 많은 곳이어서 지난 몇 년간 감자와 고구마와 같은 덩이 식물을 심어봤지만 좋은 수확을 얻지 못했다. 몇 번의 고생 끝에 최근부터는 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감자 농사를 짓는 교우나 목회자를 찾아 주문하여 먹었다. 작년의 경우에는 소속교회 목사님이 챙겨주어서 1년 내내 요긴하게 먹었다. 혼자 생활하다 보니 5킬로 정도면 1년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직 다섯 알이 남아있다. 쭈글쭈글해져서 볼품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두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찬거리다.
지난 4월 첫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과 올해의 논농사에 대해 상의를 했다. 달력을 들춰보니 어느새 볍씨 침종이 다가온 것이다. 기나긴 겨울 우리는 좋았다. 농사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퍽이나 룰루랄라 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온 농사의 계절, 갈수록 부쩍 힘들어지는 체력의 한계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서로 최면을 건다. 힘든 농사도 5년 정도면 끝일 것이라고. 그렇다. 처음 논농사를 시작할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비록 사람 수에 비해 가져가는 쌀자루는 형편없었지만 힘은 덜 부쳤던 것 같다. 그러던 공동체가 한해 한해 사정들이 생기면서 올해는 달랑 소속교회 목사님과 나만 남았다. 현격히 줄어든 수에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지난 토요일 볍씨 침종을 했다. 우리는 친환경 모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직접 거둔 볍씨를 소독하고 발아를 시켜야 한다. 사람이 많았을 때는 거의 남자들의 몫이었던 것이 달랑 둘만 남으니 남자들의 몫이 나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 일년에 한번 사용하는 솥, 소쿠리, 고무대야, 온도계, 계량컵 등을 창고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불을 뗄 나무를 준비했다. 365일 비와 바람과 볕과 냥이들의 수난을 겪고 남은 참나무를 끌어왔다. 목사님은 숨결의 집에 가서 쓰고도 남을 양의 나무를 챙겨오셨다. 마지막으로 시멘트 블록을 세워 가마를 만들었다. 솥과 고무대야 안에 물을 가득히 받아놨다. 만만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 저녁에 보니 냥이들이 솥단지 위에 올라가 눕기도 하고, 아궁이에 들어가 숨박꼭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것은 그저 신기한 장남감이자 놀이터인 듯 싶다.
토요일 아침,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셨다. 사모님과 나는 불을 지폈다. 불을 피우는 것은 요령이다. 나무를 어떻게 쌓아 놓느냐, 불쏘시개를 무엇으로 하느냐, 불이 피어졌을 때 나무들을 어떻게 들쑤시느냐에 따라 불의 강도가 달라진다. 마냥 나무를 넣는다고 하여 불이 잘 지펴지는 것도 아니다. 타고 있는 나무들을 들쑤셔 바람골을 만들어주는 것도 불이 잘 타게 하는 요령이다.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에도 필요하다. 그래야 나무를 적게 들여서도 물을 일찍 펄펄 끓게 할 수 있다. 간간히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불면서 연기가 곧게 뻗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갈팡을 잡지 못하였다. 그 바람에 매운 연기를 계속 들이키는 수난을 면치 못했다. 이리 가면 이리로 오고, 저리 가면 저리로 따라오는 통에 눈물을 쥐어짜기도 하고, 마스크를 눈까지 덮기도 하는 쇼를 부렸다.
볍씨를 소독할 소금물을 만들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가 될 때까지 계란을 띄었지만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다. 농도는 계속 옅어지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계란을 꺼내 흔들었더니 노른자가 안에서 곤 상태였다. 다른 것을 가지고 와서 시험하니 그때서야 제대로 되었다. 작년 볍씨가 좋았나 보다. 지난해까지는 가라앉은 것보다 뜬 것이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뜬 것보다 가라앉은 볍씨가 많았다. 볍씨는 소금 목욕을 하고 나서 65도의 뜨거운 물에 7분 정도 담가 소독을 한 뒤 찬물에 담갔다. 네 개의 망에 담긴 볍씨를 모두 소독한 뒤 일주일 동안 발아시킬 식촛물을 만들었다. 200대 1의 물과 식초 그리고 배양액을 섞은 뒤 낮에는 볍씨를 담가놓고 저녁에는 꺼내놓는 일을 한다. 지난 토요일부터 일일이다. 그렇게 볍씨 발아를 기다린다. 대부분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하는데 요즘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보다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세 사람이 복작복작 움직이면서도 그렇게 볍씨 소독을 잘 마쳤다. 매년 하는 것이지만 매년 새롭다. 몰라서 새로운 것인지, 한 해 시작하는 첫 마음이라 새로운 것인지 서로가 웃으며 받아넘긴다. 농사 시작하기 전에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컸지만, 막상 시작하니 모두 열심이다. 생명이 주는 힘이 그런건가 보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도 신기하고, 산 것을 더욱 살리는 것도 기쁜 일임을 농사를 하면서 깨닫는다. 다시 시작한 농사! 올해도 생명이 주는 기쁨을 얻으며 끝까지 잘 완수하도록 마음을 잡도록 한다. 그러고보니 이 또한 부활이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