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폴리 통영의 대표 먹거리 ‘충무김밥’
내가 충무김밥을 처음 먹은 것은 1996년 제대 후 복학했을 때였다. 아마도 가을이다. 서대문 감신대에서 인천 집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야 했다. 뭔가 고민과 생각이 많았는지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서울역에서 내린 후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서울역 기차역으로 가서 부산행 표를 끊고 있었다. 전혀 계획 없는 충동적인 여행이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2박 3일 홀로 여행을 했었다. 광안리 해수욕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 범어사의 녹음을 감상하며 한가롭게 걷기도 했다. 남포동의 한 극장에서 당시 인기였던 정우성과 임창정 주연의 비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 나이 24살 때였다. 그 때 남포동 시장 좌판에 할머니들이 앉아서 팔았던 것이 충무김밥이었다. 밥만 싼 꼬마김밥과 섞박지 몇 개, 그리고 오징어무침이었다. 충무김밥이란다. 가격도 2,3천 원 정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일반김밥과는 형식이 달랐기에 색달랐고 맛도 나름 있었다. 내게 충무김밥의 첫 추억은 부산이다.
하지만 충무김밥의 원고장은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바다가 멋진 항구도시 통영이다. 통영의 옛 지명인 충무식 김밥이란 뜻으로 1930년대 부산과 통영, 여수를 잇는 여객선이 개항되면서 뱃사람과 여행객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다란 대꼬챙이에 김에 싼 밥과 주꾸미, 홍합, 무김치를 순서대로 꽂아 판 것이라고 한다.
통영은 일제강정기 시절 일본인들의 정착지였다. 특히 많은 일본인 어민들이 통영에 살기 위해 왔다. 그러다 보니 부산과 통영, 여수, 중간에 남해와 삼천포를 잇는 뱃길이 필요했다. 1959년 우리나라 기술로 최초로 만든 금성호라는 배는 마산 통영간 육로가 없던 시절 뱃길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통영의 뱃길은 부산과 호남 물자교류의 요충지였다. 1960년대, 70년대는 통영항을 중심으로 여객선 황금시대가 열렸다. 옛 통영항의 이름이 강구안이었다. 황금노선의 중간거점인 통영 강구안에서 발달한 음식이 바로 충무김밥이다.
사람이 많이 오니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낙네들이 충무김밥을 만들어서 강구안(통영)까지 이고 와서 바로 여객선 부두 앞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수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통영에서 충무김밥을 사서 부산을 가는 밤배 안에서 먹었다. 매콤한 반찬 덕에 밤에는 소주안주로 인기가 많았다.
1950-70년대가 충무김밥의 전성기시대였다. 부산에서 여수로 가는 뱃길 가운데 통영, 삼천포, 하동에서 배가 정박을 했는데 충무김밥이 너무 맛있으니까 배에서 잠시 내린 손님들이 충무김밥을 사먹느라고 시간이 걸려 배를 못타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분의 할머니에게 터미널 안에 충무김밥집 자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충무김밥이 인기에 터미널 밖 노점까지 상인들이 이어졌다. 터미널 근처에는 할머니들이 충무김밥을 팔고 아들과 남편들은 육지와 큰 배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배(전마선)의 노를 빨리 저어서 여객선까지 간 다음 여객선 위로 함지박에 담긴 충무김밥을 던져놓고 배안으로 올라가 충무김밥을 팔았다. 그런데 배에서 장사하는 이들이 거제, 성포까지 가서 다시 내려 돌아와야 되는데 장사가 너무 잘되어 얼떨결에 부산까지 간 상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1973년 순천과 부산을 잇는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통영 여객선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충무김밥의 명성이 잊히나 했지만 1981년도 국풍 81이라는 문화축제에 소개된 이후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국풍81은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명분 아래 주최한 관 주도적인 문화축제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무마하기 위해 계획한 눈가리개용 행사라고 평가를 받는 행사였다.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먹거리 장터였는데 이때 충무김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전국적인 음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국풍 81행사 때 소개되어 전국적인 음식이 된 지방향토음식은 춘천막국수, 전주비빔밥 등이 있지만 최고의 인기메뉴는 충무김밥이었다. 그 행사 먹거리장터에서 충무김밥을 출품했던 분은 지금은 고인이 된 어두이(魚斗伊) 할머니였다. 당시 하루에 700인분을 준비했는데 3시간 만에 다 팔렸다. 당시 충무김밥 1인분에 천원이었는데 일주일간 순이익이 500만원이었을 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통영문화마당과 통영여객선터미널 앞에 김밥집 수십 개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다. 어두이 할머니가 운영하던 ‘뚱보할매김밥집’은 아직도 손님이 많은 가게다.
충무김밥의 특징은 김밥과 반찬이 따로 나오는 것이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에게 싸준 김밥이 상해서 남편이 술로 끼니를 대신하자 김밥이 상하지 않게 밥과 속을 따로 담아 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경상대학 최정덕 교수팀에서 충무김밥의 영양학 및 미생물적 품질 평가라는 연구결과를 보면 일반김밥과 충무김밥을 상온에 두었을 때 24시간이 경과 후 생균수를 비교해보니 일반김밥이 충무김밥보다 약 2배 많은 균이 증식되었다고 한다. 밥과 반찬을 따로 담아 두었을 때 세균의 번식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통영 어부들이 배 안에서 허기를 달랬던 한 끼 식사 충무김밥은 어부의 배에서, 여객선 위에서, 이젠 항구 주변에 정착한 통영의 향토음식이 되었다. 집집마다 양념이 조금씩 달라도 멸치액젓으로 맛을 낸 무김치의 시원한 맛과 어묵을 섞어 무친 오징어무침의 매콤한 맛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