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를 꿈꾸며
베이징 올림픽이 막을 내린다. 평창의 평화에 이어 베이징의 동행 역시 겨울 스포츠의 명불허전(名不虛傳)에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폐막에 맞추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던 도발 우려는 예상을 빗나갈 듯하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그치지 않고 있다. 아직 첫 총성이 울리지 않았을 뿐이지, 물밑 전쟁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 여차하면 인류는 우크라이나라는 역대급 전장터에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나날이 고조되는 긴장과 달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선수 사이 순수한 우정은 존재하였다.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에서 우크라이나 선수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가 은메달을 목에 걸자, 동메달리스트 러시아 선수 일리야 부로프가 다가가 안으며 축하해준 것이다. 이를 보도한 기자는 그들의 환한 얼굴에서 현실의 암울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덕담을 붙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크라이나가 딴 첫 번째 메달이었다. 아브라멘코는 인터뷰에서 “은메달을 획득해서 기쁘고 우크라이나의 첫 메달을 딴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는 경기 직후 “우크라이나에 전쟁은 없다(No War in Ukraina)”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카메라 앞에서 펼쳤다. 정치적 선전에 민감한 올림픽조직위원회지만 그의 반전(反戰) 메시지를 눈 감아 주었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불안한 현실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질 러시아와 전쟁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2008년 8월 조지아 남오세티야를 둘러싸고 조지아와 러시아 간 전쟁이 있었고, 2014년 3월 러시아 상원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였다. 보나 마나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였다. 서방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러시아와 벨라루시가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며 위협하고, 이에 맞서 미국과 영국은 군대를 파병하고, 유럽연합과 나토(NATO)는 군사력을 차출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우쿠라이나의 처지만 몹시 불안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1991년까지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蘇聯)으로 한 몸이었다. 그러나 동유럽의 사회주의권 바르샤바동맹이 해체되고 러시아 턱밑까지 유럽연합의 나토 군사력이 확장되자 러시아가 발끈하였다. 한때 우크라이나는 핵무기가 밀집한 러시아의 방어벽이었는데, 독립 이후 핵시설 해체 등 군수전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탱크 공장에서 트랙터를, 미사일 발사대 공장에서 크레인을 생산하는 ‘콘페르치아’는 평화의 모델이 되었다. 미국의 투자로 가능했던 이 과정을 ‘협력적 위협 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라고 불렀다.
일찍이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무대였다.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멀고 먼 평원은 자연적 장벽과 다름없었다. 나폴레옹의 1812년 모스크바 침공이나, 1941년부터 871일 동안 지속한 히틀러 군대의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삼았다. 전쟁영화 ‘1941년 세바스토폴 상륙작전’과 ‘증오’(Wolyn)도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인공인 유대인 가족들은 대를 이어 고향 삼은 정든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마 ‘해바라기’일 것이다. 이탈리아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징병당해 소련 지역에서 전투에 참가한 안토니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지오반나는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남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아내가 지나가는 우크라이나의 들판에는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영화에 따르면 해바라기밭은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묻은 무덤 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를 바라보고, 해를 따라가는 해바라기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1998년,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해바라기 씨와 함께였다. 그가 장관으로 있을 때에 우크라이나는 콘페르치아를 진행하였다. 미사일 기지를 농업용지로 바꾸었는데, 그 땅에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한다. 해바라기 씨앗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미 4:3)었던 증거였다. 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대한 기다림이 올해도 어김없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