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농사, 부푼 꿈은 깨어졌으나....!
생각해보니 지난해에 가장 주업이었던 콩농사에 대해 끝맺음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동생과 함께 농사를 짓다가 동생이 독립하여 고향으로 간 뒤 혼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3년 전 2019년부터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농사 또한 협력과 연대가 절실한 일이다.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더더욱 깨닫게 되는 일이다. 중간중간 힘써 힘을 써야 할 때가 있는 일이기에 힘이 넘치는 장사가 간절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필요충분조건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삼년을 그렇게 보냈다.
동생과 할 때는 주업이 고추였다.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비닐하우스 세동에 심어 고추가 열대 작물임이 틀림없다는 증명이라도 하듯이 고추는 거의 3미터 이상으로 잘 자랐고, 수확도 괜찮았다. 발목은 판로에 있었다. 농사의 기본은 심고 거두고 파는 것인데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판로다. 아무리 잘 심고 잘 거두어도 판매가 석연치 않으면 통장은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인 것이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다가 역시 나의 길은 농사가 아님을 직감하고 3년 만에 손을 들었던 동생! 3년 동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으나 만약 농사 자금에 허덕이지만 않았다면 줄곧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온 시간에 가정을 붙여봤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그 밭에 내가 시작을 했다. 그러나 나의 농사는 시작부터 헛발질이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것과 달리 나의 농사의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했다. 초기에는 거창하게 여러 작물을 심어 가꾸다가 중간에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방목과 방관과 방치가 되어 최후에는 두 손 들고 엎어졌다. 게다가 기후가 돕지 않았다. 가뭄으로 말라갔고 장마로 녹아 내려갔다. 그리고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신체도 변화가 오면서 농사는 그야말로 뒷전이었다. 처음 시작과 두 번째 해는 그렇게 변명을 하며 밭을 멀리했다. 그러다가 3년째 되는 작년, 풀이 무성한 밭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풀씨만이라도 넘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은 피하고 한 작물에 집중하자고 하여 고른 작물이 콩, 메주콩이었다.
사실 거의 600평 정도 되는 땅을 혼자 갈고, 골을 내고, 멀칭을 하고, 씨를 뿌리고, 거두고 판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작년에 무슨 바람이 났었는지 나는 그 모든 것을 해냈다. 밭을 갈고 골을 내는 것은 소속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멀칭과 씨 뿌리는 것은 일주일 동안 틈틈이 시간을 뺐다. 풀도 몇 번의 낫질과 부직포를 깔아 이겨냈다. 10월 중순까지 콩은 잘 자라주었다. 마침 수확 막바지에 알맞게 내린 비(추수가 가까운 벼와 배추, 김장 작물에는 알맞지 않았지만)로 콩은 잘 영글었다. 10월 말이 되고 11월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마을의 여기저기서 콩타작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도 덩달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협력과 연대의 진가는 타작에서 나타난다. 너른 밭에 큰 천막을 깐다. 그 위에 콩 탈곡기를 올려놓는다. 수확한 콩을 탈곡기 옆에 모아놓는다. 트랙터와 연결된 콩 탈곡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한 사람은 콩 탈곡기를 운전하고, 한 사람은 콩대를 탈곡기에 넣고, 한 사람은 자루에 콩을 담는다.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지면서 40킬로 콩자루가 하나씩 쌓아진다. 내가 늘 눈여겨보는 아랫동네 사는 전문 농부는 더 전문가인 아버지와 그 농부와 그의 부인이 한조가 되어 탈곡을 하였는데 이번에 그의 콩 수확량은 거의 만톤이 넘었다고 한다. 나같은 초짜는 엄두도 못 낼이다.
뭐, 나도 초창기엔 그런 욕심이 있었다. 평당 1킬로씩 수확한다고 하여 꿈에 부푼 기대를 하였지만 역시 농사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 부푼 꿈이 터진 것은 수확한 콩자루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250에서 300평 정도 하였다면 거의 300킬로 정도 나왔어야 했는데 나는 거기에 훨씬 미치지 못한 3분이 1수준이 되었으니 꿈은 그저 꿈이었다. 터져서 날아가 버리는 꿈 사이로 스스로 격한 위로를 재빠르게 채워 넣었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콩농사를 포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약한 수준의 콩이나마 수매해 주는 곳이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콩이 썩 고르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기대에 못미친 수확량이었음에도 흔쾌히 받아주신 강화의 콩세알 대표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게 끝난 콩농사였으나 그래도 나는 내년에 그러니까 올해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뻔한 말을 흘려보내지 않고 올해는 덜 실패하도록 지어보련다. 밭을 갈고 골을 내는 일과 거두고 수확하는 것, 그리고 판매는 이미 예약되어 있으니 나는 멀칭하고 심고 가꾸고 풀만 잘 잡으면 될 일이다. 하늘의 기후 또한 잘 도와준다면 금상첨화다. 혼자 하는 농사라 수고스러운 면이 많겠으나 도움의 손길이 주위에 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고맙다.
설 연휴가 다가왔습니다.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