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자만 알리라.
엊그제 지난 한 해 수확했던 콩을 전달하러 멀리 강화 여행을 자청했다. 그동안 5등급 차량이라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기타 큰 도시의 진입이 불가했던 나의 애마 쏘렌토가 드디어 긴 줄의 대기 번호표를 떼고 저감장치를 부착함으로써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았다. 그렇게 얻은 자유를 엊그제 유용하게 포효하러 나선 것이다. 차 뒷부분 왼쪽에 저감장치 부착 차량이라고 큼지막하게 파란색 딱지가 붙여졌다. 짙은 자주색의 차량과 밝은 파란색의 딱지, 그리고 초록색 번호판이 멀리서도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묘한 촌스러움을 나타내었다.
그동안은 연식이 오래된 차량임을 초록색 번호판만으로 나타내었는데 딱지를 붙인 이번 계기로 오랜 5등급 차량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더 보여주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지난 목요일까진 미세먼지 농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읍내마저 차를 끌고나가는 것이 눈치가 보였는데 하루 사이 그 딱지 하나로 나의 어깨는 위풍당당, 여유만만, 배포 가득한 모습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차가 내 앞뒤 옆으로 둘러싸여도 ‘이제는 괜찮아! 나에겐 저감장치가 부착되어 있으니’ 하며 호기스럽게 달린다. 그런 마음이 드니 이전보다 더 내 차에 대한 애착이 넘쳐났다.
2014년도 크리스마스 이브날 얻은 쏘렌토는 멀리 평택에서 시집을 왔다. 차가 크고 넓고 4륜 구동이라 농촌에서 특히 경사가 마을 입구에서 도착지까지 있는 지역에서는 엄청 요긴하게 탈 수 있는 차다. 트렁크도 넓어 겨울날 연탄재 4개씩 묶은 비닐을 서른 개까지 실어나를 수 있고, 각종 농자재나 무거운 시멘트를 몇 포씩 실어도 끄떡없는 차다. 게다가 SUV 차량이기 때문에 운전할 때의 넓은 시야는 운전할 맛을 갖게 한다. 게다가 이전 차주가 차를 매우 잘 관리하여 미션을 간 거 외에는 특별한 수리 없이도 지금까지 잘 견디어 주었다. 이런 차가 재작년 5등급이란 딱지가 붙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가. 애마는 달리고 싶었으나 달릴 만한 도로가 제한되었다. 도시 안 출입은 꿈도 꾸지 못할 노릇이었다. 도시 입구 들어가는 곳마다 노후차량 제한이라는 글귀가 CCTV에 선명하게 나타났고, 만약 CCTV에 찍히면 10만원이라는 과태료가 부과되어 날라오게 되었으니 근거리 외에는 운행을 자제하였다.
지난해 군에서 거의 90%를 지원하는 저감장치 부착을 신청했다. 내 차례가 오려면 대기인원 500여 명을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차에 작년 12월 초에 연락이 왔다. 내 차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문자 한 통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마치 대학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기다리던 보람도 컸고, 더이상 폐차를 언급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하여 지난 금요일 아침 일찍 충주에 있는 공업사에 가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파란 스티커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 차량은 저감장치 부착 차량입니다. 이 문장 하나에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눈녹듯 사라졌다. 비록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스티커라 할지라도 기쁨이 한가득 태워진 차가 되었으니 촌스러움은 잠시잠깐 느끼면 그만이다. 그까이꺼 촌스러우면 어떠랴! 이제는 도시 한복판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자랑스런(?) 차가 되었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않으랴.
그 차를 타고 엊그제 강화를 다녀왔다. 생각보다 머나먼 운행이었다. 그날따라 고속도로에 차들은 넘쳐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중간에 공사로 인해 정차하기도 하고, 잠시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와 커피 한잔 사고, 매번 막히는 양재 부근에서는 서행을 하고, 내 앞에서 깔짝거리는 차를 피하느라 숨을 고르면서 가도 음성에서 강화 가는 길은 멀고도 먼 외지길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무척 좋았다. 새 차를 얻은 듯한 기분이기도 했다. 내 좌우와 앞뒤로 벤츠, BMW, 렉서스, 제네시스 등 좋은 차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도 그 가운데에서 전혀 꿀리지 않고 빛나는 저감장치 부착 스티커가 촌스럽게 눈에 띄게 큼직하게 붙여져 있는 나의 오랜 친구와 같은 자줏빛 차량.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든 간에 이제는 마음 놓고 어디든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였다. 그렇게 나는 2년 만의 장거리 운행으로 그간의 서러움을 달리는 도로 위에 훌훌 날려버렸다. 앞으로도 종종 머나먼 자유 여행을 해보리라. 얼마나 좋으면 그럴까? 그러게 말이다. 노후차량 딱지를 뗀 그 기분, 아는 자만 알리라.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