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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29 00:20
   
토마토케첩의 뿌리는 중국의 생선액젓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0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737 [182]

 

토마토케첩의 뿌리는 중국의 생선액젓

 

오므라이스와 감자튀김을 먹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토마토케첩이다. 별로 대단치도 않고 비싸지도 않지만 막상 필요할 때 없으면 굉장히 아쉬울 때가 있다. 우리는 케첩하면 토마토케첩을 떠올린다. 하지만 케첩(Ketchup)은 과일이나 채소 따위를 끓여서 걸러낸 것에 설탕, 소금, 향신료, 식초 따위를 섞어서 조린 소스를 가리킨다. 토마토케첩은 케첩이라는 범주 안에 속한 한 가지 종류의 케첩이다.  

 

토마토케첩은 햄버거,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을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대중적인 소스이다. 하지만 케첩의 시초는 17세기 중국인이 먹던 생선 소스이다. 케첩은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만들어졌다. 발효 생선에서 파생된 이 소스는 생선과 콩 등을 발효해 만든 굴 소스와 비슷한 타입으로 식초와 소금 등 향신료를 넣어 톡 쏘는 맛을 낸 것이다. 케첩은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다. 케첩은 본래 중국 푸젠성 남부와 타이완의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소스’ 즉 ‘젓갈’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케첩, 쿠에찹, 코에찹, 등으로 발음이 조금씩 달랐다. 

 

17세기 초반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 소속 선원이 인도네시아의 중국인 상인들에게서 생선 소스인 케첩을 사서 런던에 가져갔다. 동인도 회사는 후추를 비롯해 생강, 계피, 정향, 육두구를 비롯해 아시아의 차까지 각종 향신료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생선 액젓도 주요교역물품이었다. 동남아 현지에서는 값싼 생선 젓갈이었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가져가면 동양에서 온 신비롭고 값비싼 조미료로 둔갑했다. 험한 태평양을 건너 서너 달의 항해 끝에 도착한 양념이다 보니 영국에서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국으로 건너간 아시아의 생선 액젓은 세월이 흐르면서 완전히 새로운 소스로 변신했다. 아시아의 양념이 영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생선액젓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영국인 입맛에도 맞추고 양도 늘이기 위해 영국인들은 생선 액젓에 버섯, 호두, 굴, 홍합, 복숭아, 자두 등의 다양한 재료를 넣어 소스를 다시 만들었다. 

 

영국에서 최초의 케첩 레시피는 1758년에 엘리자 스미스(Eliza Smith)가 쓴 요리책 <완벽한 주부(Compleat Housewife)에 실려 있다. 여기에 케첩은 유럽 멸치인 안초비에 정향, 생강, 후추를 넣어 만든다고 나온다. 1850년대 중반 영국의 케첩에서 안초비가 빠졌는데, 이 케첩이 식민지 시대 영국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드디어 토마토케첩이 등장한다. 

 

토마토케첩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1812년 필라델피아의 저명한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제임스 미즈(James Mease)였다. 당시에는 토마토가 독성 있는 베리류와 비슷해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토마토를 먹지 않고 관상용으로만 키웠다. 제임스 미즈는 이 토마토를 이용해 케첩을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토마토케첩이 널리 퍼진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인 19세기 후반이다. 빨리 자라고 쉽게 재배할 수 있는 토마토가 남군과 북군 모두의 군용식량으로 채택했되면서 이전에 꺼려졌던 토마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토마토케첩 생산회사가 100개 이상 늘어날 정도였다. 

 

1876년경 미국의 식품회사 하인즈는 설탕과 식초를 많이 넣으면 케첩의 저장성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달콤새콤한 맛의 토마토케첩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케첩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하인즈는 세계 최대 케첩 회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인기는 매년 6억 5000만 개가 판매되고 있을 만큼 꾸준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에서는 케첩하면 토마토케첩을 가리키게 되었다. 

 

하인즈의 토마토케첩은 유리병에 담겨서 팔렸다. 지금의 케첩용 튜브 용기는 1966년 일본의 토마토케첩 전문회사인 카고메(kagome)에서 개발한 것이다. 카고메에서도 1908년 토마토케첩을 처음 출시할 당시 360밀리리터의 유리병 용기를 사용했다. 그러다 1950년대 후반 일본 소비자들이 유리병에 담긴 토마토케첩을 제대로 다 시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튜브 용기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한국 최초의 토마토케첩 제품은 1971년 8월 풍림식품공업주식회사(지금의 오뚜기)가 제품화한 ‘오뚜기케첩’이다. 1986년 미국의 하인즈사가 서울식품공업과 합작하여 서울하인즈를 설립하고 국내 토마토케첩 시장에 뛰어들었다. 1987년 8월 미원(지금의 대상그룹)은 미국의 CPC인터내셔널사와 합작하여 한국크로르사를 세우고 1981년부터 마요네즈와 토마토케첩을 생산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의 식품회사가 한국의 토마토케첩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에서 직수입한 고가의 생선 액젓 케첩이 영국에서 버섯케첩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토마토케첩으로 변신한 후 서민들도 먹을 수 있는 저렴하고 대중적인 소스로 다시 아시아로 전해졌다. 돌고 도는 인생처럼 케첩도 돌고 돈 것이다.  

 

임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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