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타타의 추억
복된 성탄절입니다! 올 해 저는 매우 뜻깊고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하지 못했던 성탄 칸타타를 준비하며 강림 절기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탄 당일에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강림절의 늦은 밤 시간에 연습하는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한 은혜였습니다. 목자들처럼, 혹은 동방박사들처럼 노래와 피아노 악기를 맡은 모든 분들이 별 빛이 인도하는 베들레헴을 향한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우준섭 형제님은 열정의 성가대원이신 우진섭 권사님의 동생인데 형의 명으로 음반을 들으며 영어 내레이션 대본을 다시금 정리 해 주셨습니다. 영어 대본을 바탕으로 한국어 대본을 다시금 다듬자 명확고 은혜 충만한 메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내레이션은 89년 동갑내기 임은규 강가배 집사님 부부가 맡아 주셨는데 연상의 마리아와 철부지 남편 요셉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보여 주었습니다.
2021년 성탄절에 울려 퍼질 칸타타는 미국의 작곡가 로이드 라슨이 작곡한 ‘베들레헴 가는 길/The Road to Bethlehem’입니다. 너무나도 좋은 작품입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기에 스무 명 이상의 성가대원이 있는 교회라면 성탄 칸타타로 강력히 추천합니다. 칸타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그 여정에 떠납니다. 말구유 아기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소망이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모두는 베들레헴으로 향해 갑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늘의 별이 아기 예수님의 작은 얼굴을 비춥니다. 그 얼굴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칸타타는 원래 1700년 이후 독일의 루터파 개신교 예배의 음악으로 사용된 교회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칸타타는 오늘날의 성가대 찬양 같이 예배의 부수적인 음악이 아니라 교회력 성서일과에 맞춰 그 주의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고 그 장면을 음악으로 그려내며 시로 승화키고 영적 권면을 하는 음악적-문학적-회화적인 ‘통전적 설교(Holistic Serm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종교개혁 이래 루터교 전통에서는 복음서 성서독서를 더 고양시킬 목적으로 복음서 봉독 후 복음서 내용을 가사로 한 간단한 합창곡인 ‘복음서 모테트’를 연주해왔는데, 17세기 말에 이르러 아리아와 코랄 악장들이 추가된 ‘콘체르토 모테트’가 ‘복음서 모테트’를 대신하게 되었고, 1700년 이후에 성경구절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서 점차 그 구절들을 해석하고 영적 권면을 하는 일종의 음악적 설교로서의 ‘칸타타’가 등장했습니다. 바흐는 바이마르(1713~1716)와 라이프치히(1723~1750)에서 교회 음악가로 활동하며 300여 곡(현존 약200곡)의 칸타타를 작곡했습니다. 그 시절 동안 바흐는 거의 매 주 하나의 칸타타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바흐 칸타타의 작품성과 규모를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지요. 하나님께서 부여한 성스러운 소명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칸타타는 바흐 스스로가 주음악(Hauptmusik)이라고 일컬었으며 바흐 작품번호의 1번부터 200번까지에 교회 칸타타가 자리하듯 칸타타는 그의 음악 작업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칸타타’라는 용어의 어원은 ‘소나타’와 연관이 깊습니다. ‘소나타/Sonata’라는 이름은 '소리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소나레'(sonare)에서 유래되었는데, 소나타는 3~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기악곡을 의미합니다. ‘칸타타’는 소나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는데 그 이름은 ‘노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어어 ‘칸타레’(cantar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칸타타는 여러 개의 곡이 한 작품을 이룬 성악곡을 의미합니다. 칸타타 초기 형태는 이탈리아에서 세속 칸타타로 유행했지만 종교개혁이 뿌리를 내리고 가장 이상적으로 꽃피웠던 바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교회 칸타타가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근엄하고 진지할 것 만 같은 바흐도 매우 재미있는 세속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는데 바로 ‘커피 칸타타’입니다. 그 당시 터키와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독일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는데 그 신기한 맛에 매혹된 바흐가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것입니다. 근엄한 음악 교과서 속의 이미지와 달리 바흐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성탄 전야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사무실에 홀로 남아 내일 성탄절에 예배당에서 울려 퍼질 찬양 소리를 상상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2021년의 성탄 칸타타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평생 가장 잊지 못할 칸타타의 추억은 따로 있습니다.
2002년 성탄절, 당시 병장이었던 저는 동해 바다가 보이는 군인교회의 지휘자였습니다. 그 때도 성탄 칸타타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성탄 전날에 영동 지역에 폭설이 내려서 모든 병력의 이동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우리 부대와 사단 교회는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망연자실하여 있을 때, 저 멀리서 성가대장님이시던 이충희 소령님의 갤로퍼 차량이 이리저리 미끌어지면서 막사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속초에서부터 눈길을 뚫고 성가대원을 태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정말이지 저는 그 갤로퍼가 여러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설원의 마차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성가 대원들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탄절 예배인대 성가대원 보다 회중의 숫자가 더 적은 것이었습니다. 폭설로 인해 사단의 모든 병력의 이동이 금지 되었고 결국 담임 목사님 가족 네 명과 교회 앞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만이 예배당에 앉아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들을 사람도 없는데 칸타타를 생략하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칸타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임했습니다. 결국 총 다섯 명의 회중 앞에서 칸타타를 올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칸타타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님이시며 성탄 칸타타는 아기 예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휘를 하면서 그와 같은 생각이 들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성탄절의 칸타타 찬양은 저의 신앙관과 찬양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에 가득한 하얀 눈밭 너머의 동해 바다는 너무나도 푸르렀습니다. 저의 가장 아름다웠던 칸타타의 추억은 그랬습니다.
조진호
https://youtu.be/OaGmhvpCg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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