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카우》 (First Cow, 2019)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퍼스트 카우》는 서부극이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전형적인 서부극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허리에 총을 차고 멋진 모자를 쓴 모습으로 말을 타고 등장하는 주인공, 거친 카우보이들, 총잡이들의 대결, 인디언과의 전투 등등등. 하지만 《퍼스트 카우》에는 이런 장면들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익숙한 술집에서의 난투극조차 밖으로 싸우러 나간 술집의 남자들을 카메라는 따라가지 않는다. 그동안 서부극이라는 형식의 핵심과 본질을 구성했던 싸움이나 폭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오히려 영화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다음 시구로 시작한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자막이 끝난 첫 장면은 현재 콜롬비아 강을 타고 느리게 흐르는 길고 거대한 화물선의 모습이다. 그 근처를 개와 함께 걷던 한 여자는 나란히 누운 두 유골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화는 훌쩍 200년을 뛰어넘어 과거로 향한다. 아직 미국이라는 나라가 온전히 형성되기 이전의 서부시대로.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은 서부를 향하는 한 무리에서 취사를 담당한 유대인 요리사 쿠키다. 황금광을 향해서인지 비버 사냥을 위해서인지 들뜬 꿈을 안고 서부로 향하는 거친 무리들은 자신들과 다른 유순하고 조용한 쿠키가 못마땅해 가는 길 내내 그를 괴롭히기 일쑤다. 떨어진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숲속에서 버섯을 따던 쿠키는 러시아인들 무리에서 알몸으로 도망쳐 숲속에 숨어있던 중국인 킹 루를 만난다. 쿠키는 그에게 남들 몰래 따뜻한 옷과 자신의 잠자리를 제공한다. 쿠키의 환대로 한숨을 돌린 킹 루는 자신을 추격하는 러시아인들을 피해 이른 아침 강을 헤엄쳐 도망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다시 만난다. 모든 사람들이 싸우러 나간 술집에 남아 있던 단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이번에는 킹 루가 쿠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두 사람은 함께 사업을 시작한다.
끊임없이 런던의 생활을 그리워하던 지역의 유지는 우유를 섞은 영국식 티를 마시기 위해 지역 최초로 암소를 들여오고, 사업가 기질이 충만한 킹 루의 아이디어에 따라 쿠키와 킹 루는 밤마다 몰래 암소로부터 우유를 짜내 빵을 만들어 거리에 내다 판다. 우유가 없는 동네에서 우유를 섞어 만든 빵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그들은 서서히 다음 사업을 위한 돈을 모아간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려갈 리는 없는 법이다.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잔인한 폭력과 노동자 수탈의 방식으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한 주요한 두 가지 요소다. 그런데 이 이상한 서부극을 통하여 감독은 미국의 역사를 형성해온 요소들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며 대안적 역사를 꿈꿔본다. 영화의 주인공인 유대인과 중국인, 이 두 아웃사이더는 단순히 출신상으로뿐 아니라 성격과 기질에 있어서도 서부시대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이 두 아웃사이더들 사이의 놀라운 환대의 방식을 주제로 삼는다. 그들은 어떤 의심도 없이 즉각적으로 서로를 향해 이유 없는 환대를 베푼다. 감독은 이것으로, 오직 이것으로만 우정이라고 불릴 만한 관계가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와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영화는 흔히 보는 옆으로 길쭉한 화면이 아닌 옛 텔레비전의 4:3 비율로 두 사람을 보다 가깝게 밀착시킨다. 영토 확장의 역사 초기에 아직 온전히 미국의 땅이 아닌 곳을 배경으로 총의 대결이 아닌 음식의 대결을 펼치는 새로운 서부극, 느리고 따스하고 온유하며 미소를 머금은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은 올해의 최고의 영화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강함과는 다른 유약함과 부드러움으로 무장한 쿠키와 킹 루는 기독교의 정신으로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이 하지 못 한 바로 그 기독교의 정신, 이유 없는 환대의 정신을 실천한다. 그것도 힘이 아닌 온유함으로. 그리하여 주인공 두 사람은 마침내 집을 얻게 된다. 새에게 둥지와도 같은, 거미에게 거미줄과도 같은, 그런 우정이라는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