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의 전쟁
언젠부터 사무실에 쥐똥이 생겼다. 크기도 꽤 컸고 냄새도 심했다. 쥐가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잠깐 생각을 하다가 한 날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냄새가 사무실 가득 진동했다. 그 찌린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그날은 사무실을 뒤엎기로 마음을 먹었다. 길쭉하고 통통한 검은색 쥐똥의 행방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살피려고 쥐똥이 있는 곳을 따라갔다. 사무실 씽크대 밑에서 냄새가 유난히 진동했다. 씽크대 옆에 쌓아놓은 각종 물건들을 옆으로 옮겼다. 박스가 다 옮겨지자 벽 구석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아마 쥐의 크기가 그 구멍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름이 10센티도 안되는 구멍이었다. 구멍을 얼마나 잘 갉아놓았던지 정말 보름달 마냥 동그랬다. 그 기술이 놀라웠다.
농촌의 옛집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사는 집도 흙집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단열이 잘 되어 있는 흙집에서나 그렇다. 내가 사는 흙집은 아주 오래전에 지었고, 외벽은 얇디얇아서 처음엔 여름에는 습기를, 겨울엔 찬바람을 이불삼아 살았다. 그러니 얼마나 덥고 얼마나 추웠겠는가. 살면서 지붕도 얹고 외벽도 손질하고 내벽도 수리하면서 지금은 그런대로 지낼만한 집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쥐들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쥐들도 야생살이를 한다. 굳이 사람 사는 집에 살 이유가 없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린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저곳에서 묻어 산다. 그러다 겨울이 시작되면 사람이 사는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어딘가에 보금자리를 틀고 겨울내내 우당탕탕 층간, 벽간 소음으로 갈등을 유발시킨다. 어떤 날은 소음이 너무 커서 천장이나 벽을 주먹으로 탕탕 치곤 한다. 그러면 잠시 조용해지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집안과 마당에 고양이들이 그렇게 많아도 쥐들은 박멸되지 않는다. 다만 거처를 옮길 뿐이다.
그렇다. 집안과 마당에 한가득인 고양이들로 인해 집 주위의 쥐들은 모조리 소탕되었다. 예전엔 닭장 안에 닭이 여러 마리가 버젓이 움직이는데도 쥐들이 몰려다녔다. 두 눈으로 보고, 나와 눈이 딱 마주쳤지만 쥐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양이들이 몰려다니면서 호령을 하니 점차 내 손가락만한 쥐들까지 모조리 잡혀 먹히든지 장난감이 되든지 하였다. 그러다보니 쥐들은 고양이를 피해 피난을 가야했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사무실이었다. 내가 사는 집과 마찬가지로 사무실도 연식이 꽤 된 집이다. 오래된 집이라도 내가 24시간 거처하는 곳은 그나마 이곳저곳 손을 봐서 쥐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무실은 양철 지붕부터 바닥까지 손이 가야할 곳이 너무 많다. 50년 전 얹힌 함석 지붕은 가장자리가 녹이 슬어 처마는 어느결에 사라졌고 비가 오면 물이 지붕 안쪽으로 쓸려 들어오고 있다. 거기다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말벌들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고, 쥐들의 영원한 고향이 될 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장만이 아니라 외벽인 흙을 갉고, 나무를 갉고, 스티로품을 갉으면서 사무실 안으로 침범을 했다. 더 경악할 일은 벌레가 생기지 말라고 내가 손수 지은 소중한 쌀을 담아놓은 페트병도 갉아서 그 안의 쌀도 모두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한두통도 아니고 거의 스무통이나 축을 내었으니 내 분노(?)가 하늘을 찌를 뻔했다. 닥치는대로 갉아버리는 그 이빨이 얼마나 단단하고 날카로울지는 지금까지 녀석들이 한 범죄(?)로 짐작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작은 사무실 문을 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얼른 그곳으로 쫓아갔다. 부직포 가방이 담겨있는 상자 안에서 소리가 났다. 상자를 열었다. 세상에나! 가방은 하나도 못쓰게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버리려고 손에 쥐려는데 에그머니나~~~ 쥐 한 마리가 불쑥 튀어오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녀석을 잡으려는 순간 툭 튀어올라 씽크대 구멍 쪽으로 도망가버렸다. 아, 아깝다. 내 손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녀석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 녀석은 토실토실하고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사무실 안에서 얼마나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였던가. 빛나는 까만 눈동자에서도 기품이 흘렀는데, 드디어 너는 오늘 제삿날이 되겠구나.
작은 사무실 뿐이 아니다. 주요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곳도 사방팔방 녀석들의 흔적이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업무 보는 책상 밑에도 이미 콤파스로 그려도 그렇게 나오지 않을 듯한 동그란 구멍과 흙, 나무, 스티로폼 잔재들이 난무했다. 쥐똥과 오줌은 덤이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 길로 마트로 향했다. 진열대에 있는 쥐돌이 끈끈이를 보면서 아직도 저것을 쓰는 곳이 있구나 했었는데 내가 그것을 쓰게 될 줄이야 그때는 진정 난 몰랐었다. 처음에는 6개를 샀다. 나중에 20개 들어있는 한 박스를 살 것을 후회했다. 성능이 그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쇼파와 씽크대 밑과 자주 다닐 만한 곳에 깔아놓았다. 제법 머리가 좋다고 하는 녀석들이 과연 잡힐까 하는 반신반의는 그 다음날 기분좋게 깨졌다.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 가운데는 나와 눈이 딱 마주쳤던 그 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그날이 녀석의 제삿날이었다. 고이 보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에도 수확이 꽤 되었다. 한 곳에 두 마리가 잡힌 곳도 있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지 끈끈이를 제외한 곳이 거의 갉아져 있었다. 살려는 의지, 도망가려는 의지가 어찌나 세었는지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았다. 애석하지만 어쩌랴! 여기까지가 너와 나와의 인연이었던 것을. 그렇게 쥐들은 보내어지고 있다. 얼마나 더 잡힐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층간, 벽간 소음이 사라질 때까지 쥐와의 전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 본다. 저 사무실에 들어가면 우리는 모두 황천길이야 라는 소문이 녀석들 사이에 퍼질 때까지 쥐돌이 끈끈이는 계속 놓아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밭에서는 풀과의 전쟁, 집에서는 쥐와의 전쟁이다. 나는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인데.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