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여행
어느새 11월에 접어들었다. 겨울부터 시작한 한 해는 얼마나 빠른지 참 부질없이 흐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말연시에 걸어둔 두툼한 달력은 이제 밑바닥이 느껴질 만큼 달랑거린다. 습관적으로 월력을 넘기다보니 시간의 속도에 대해 감각이 무뎌졌다. 나이 값으로 따지면 이젠 속도감에 대해 적응할 만한데, 쉽지 않다. 심리적 나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세월 탓만은 아니다.
요즘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젊은이들이 더 자주 한다. 오래 부대껴온 입시를 거쳤는가 싶으면 곧 취업을 고민한다. 그뿐 아니다. 숨 가쁘게 찾아오는 인생의 통과의례 앞에 서노라면 비명부터 나올 것이다. 심리적 시속은 세대 간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다.
과연 세월의 속도계는 얼마나 빠른 걸까? 1초라는 세월의 속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초속 430m라고 한다. 지구의 자전(earth's rotation) 속도를 세월로 치환하여 지구가 한 바퀴 맴 돈 것으로 어림하였다. 이렇게 따지면 세월은 KTX 고속열차보다 5배가 빠르다. 더 놀라운 것은 지구의 공전(earth's orbit) 속도는 무려 1초에 30Km라고 한다. 1년 동안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려면 그야말로 우주공간을 휘익 날아가야 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질어질하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세월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현기증을 느낀다고 날아가는 지구에서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기에 존재하고, 잴 수 있다”고 하였다. 요점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잘 관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속도감에 주눅들 일은 아니다.
일 년이란 세월여행 중에서 11월은 가장 쓸쓸하고 어두운 달이다. 날은 성큼 어두워 가고, 밖은 점점 추워지며, 몸은 움츠러든다. 차갑게 식어가는 대기는 겨울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분명한 예후이다. 그런 늦가을의 발걸음은 항상 종종 거린다. 성큼 다가 올 연말연시를 준비하고 1년을 마무리하며 결산해야 할 초초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1월은 설레이는 빨간색 기념일이나 명절이 없는 유일한 달이다. 물론 마음의 액셀레이터를 줄이면 여유있는 시간여행은 언제나 가능하다.
하나님의 달력으로 11월은 마지막 달이다. 교회력으로 따지면 ‘끄트머리’ 달, 곧 끝이자 머리, 곧 마침이고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11월 하순에는 감사절과 한 해를 마감하는 교회력 마지막 주일이 있다. 그리고 대개 11월 말이나 12월 초는 대림절로 한 해를 다시 시작한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새 달력을 내 건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의미에서 11월은 내 영혼의 방에 등불을 켜는 시간이다. 그런 등불을 예비하면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한다.
독일교회에서 배운 교회력에는 11월의 깊숙한 의미가 잘 배어있다. 1일은 ‘모든 성인의 날’이고, 교회력 마지막 주일 직전 수요일은 ‘회개와 기도의 날’(Buss und Bettag)이며, 교회력 마지막 주일은 ‘영원한 주일’ 또는 ‘그리스도 왕 주일’이다. ‘회개와 기도의 날’은 일부 주(州)에서는 국경일인데, 개인의 회개와 성찰을 공공의 차원, 공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권장하고 있다.
삶이 정녕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맞을 시간에 의미를 붙이고, 내 인생의 세월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의 매듭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지만, 정지된 시간처럼 지루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게 세월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빠른 속도로 부피감이 줄어들지만, 누구에게 시간은 기다림의 연속처럼 한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느끼는 속도감은 절반은 심리적이고, 절반은 사회적인 셈이다.
결국 세월은 금새 다녀갈 손님이 아니라, 결코 오지 않을 불청객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님의 시간은 느긋느긋 흘러서 피날레 선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크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종점이며 동시에 시점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창조의 시간이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