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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21-10-31 00:00
   
루터, 말의 기적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07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11 [154]

 

 

루터, 말의 기적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포스터에는 붉은 바탕 위에 독일어 “Im Anfang war das Wort”(요 1:1)가 선명하다. 종교개혁사에서 마틴 루터(1483-1546)의 말이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지 짐작할 만하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을 회복시킨 장본인이며, 동시에 그 역시 숱한 말을 남긴 당사자이다.

 

  루터가 한 가장 유명한 말은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정문에 내 건 대자보로, 가톨릭교회를 향해 각을 세웠던 ‘95개 논제’였다. 역사학자 다니엘 유테에 따르면 당시 대자보를 거는 일은 비텐베르크 토론 관행에서 아주 보편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성당의 문은 대중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게시판 역할을 하였다”(<1517 종교개혁> ‘고요한 개혁’, 티트마르 피이퍼). 루터는 자신이 평소 고심하던 속죄에 대한 문제의식과 교회가 위임한 요한네스 테첼의 면벌부 판매에 대한 비판의지 속에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진지하게 토론을 제기한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萬聖節), 이른바 ‘모든 성인의 날’ 전야에 문자로 공표한 그의 말은 삽시간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듯’ 흩어졌다. 루터가 제기한 말들은 당시 어둠의 시대를 난타하여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와 같았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를 흔든 이슈는 속죄의 문제였다. 중세천년 동안 전통과 사제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와 권력자가 된 현실에 대해 물음을 던진 것이다. 결국 ‘용서는 누가 하는가?’란 속죄의 문제였다. 

 

  루터가 제기한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일곱 성사 중 고해성사와 연관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제1조).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와 같은 행위의 의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결론 내렸다. 단지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닌, 면죄부 판매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뜨거운 도발이었다. 

 

  마침내 1521년 1월, 교황에게 파문당한 루터는 그해 4월 황제 카를 5세의 소환을 받아 보름스 제국의회로 갔다.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했다. 그는 자신이 겪는 두려움을 ‘지붕 위에 있는 기왓장의 수만큼이나 많은 마귀들’로 비유하였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결연히 맞섰다. 보름스 의회에서 한 루터의 선명한 증언은 말할 나위 없이 세기적인 용기로 평가받는다. “주님, 나는 여기 서 있고, 다른 일은 할 수 없나이다.” 

 

  1868년 리첼은 보름스 제국의회 참석을 기념하여 루터광장을 조성하였다. 루터를 중심에 두고 개혁의 선구자 네 인물은 앉아있고, 동시대 개혁 동지들 네 영웅은 서 있는 종교개혁자 동상 군(群)이다. 종교개혁은 루터 홀로 한 일이 아니었으나, 루터는 커다란 진보를 이룬 장본인이란 의미일 것이다. 개혁 500년을 맞아 루터 광장은 커다란 청동 신발 하나를 추가하였다. ‘루터의 커다란 신’을 상징하는데, 그가 내딛은 종교개혁의 위대한 큰 걸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루터는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11주 동안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 그는 “고해성사를 하라”라고 번역된 라틴어 성경의 한 구절(마 3:2)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바로 잡았다. 회개는 사제가 아닌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사건이어야 한다. 1522년 9월에 출간하여 ‘9월의 성서’라고도 불리는 독일어신약성경은 루카스 크라나흐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도 담겨있다. 두 달 만에 무려 5,000부가 팔렸으니, 루터가 “인쇄술, 그것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다”라고 언급할만하다.

 

  지금도 루터의 말들은 루터의 도시들과 루터의 길 그리고 기념물 어디에든 남아있다. 비텐베르크 광장 한가운데에는 멜랑히톤과 루터의 상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 아래 “복음을 믿어라. 내 주는 견고한 성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는 손에 종교개혁의 대표적 브랜드인 성경을 들고 있다. 가까이 루터하우스에 있는 아내 카타리나 동상에도 루터의 말이 적혀 있다. “나는 나의 케테를 프랑스와도, 베니스와도 바꾸지 않으리라.”

 

  루터는 죽을 때까지 말과 말들을 남겼다. 유언은 “우리는 거지이다. 이 말은 참되다”(Wir sind Bettler, das ist wahr)였다. 루터가 남긴 말들은 말의 홍수 속에서 말다운 말을 찾기 어려운 오늘의 교회와 신앙적 삶을 향해 나직이 웅변하고 있다. 종교개혁의 언어가 된 그의 말들이 ‘태초의 말’처럼 평가받는 이유다. 다름 아닌 귀 있는 자 루터가 들었던 ‘말의 기적’이 그 출발점이었다.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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