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달력 마음의 달력
현대 정통유다이즘을 창설한 랍비 삼손 라파엘 히르쉬(Samson Raphael Hirsch)가 한 말이다. “유다인의 교리는 그들의 달력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삶을 헤쳐 나가게 하는 시간의 톱니바퀴에 영혼을 고무시키는 영원한 말씀을 새겨주시면서 당신 전령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날과 주와 달과 해를 만드셨다.” 유대력의 의미를 압축한 명구이다.
유대력은 오늘 그리스도교 달력과 호응한다. 성경의 절반을 공통의 경전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유월-무교절은 성(聖)주간(고난주간), 칠칠절은 성령강림절과 접점을 이룬다. 그리스도교는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빠스카 절기와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을 2C 중엽에 제정하였다. 성탄절은 336년 이전,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주현절은 5C 말, 삼위일체주일은 1334년에 확정하였다.
초대교회에서 맨 처음 제정해 지켜오다가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선포로 공식화한 주일(안식 후 첫날, 작은 부활절)을 비롯하여 교회의 월력은 4세기 말엽에 현재의 틀을 갖추었다.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하여 다시 대림절로 순환하는 ‘믿음의 달력’을 지닌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교회력의 뼈대는 크게 7개의 절기이다.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창조절’이다. 교회력은 ‘하나님의 달력’이다.
현재 세계에서는 40여 개의 달력체계가 공존한다. 공통분모처럼 사용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은 1년의 평균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였다. 세계인은 시간과 역사를 측정하는 잣대로 그레고리력과 별개로 비잔틴, 중국, 인도,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단군기원에 이르기까지 저 마다 고유한 달력을 고집한다.
현재 달력체계의 뼈대를 이룬 율리우스력은 이집트 원정을 한 율리우스 케사르가 주전 42년에 태양력을 로마의 달력으로 차용한 데서 비롯된다. 이 달력은 주후 321년부터 7일을 주(週) 단위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달력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의 치명적인 오차를 과감히 수정하여 그해 “3월10일 다음날은 3월21일이다”라는 새 역법을 공포한데 따른다.
교회력은 1년을 하나의 단위로 하는 원(圓)으로 구성한다. 한 해는 ‘교회력 시작인 대림절 첫째주일부터 마지막인 영원한 주간 토요일’까지 한 바퀴의 시간을 주기(週期)로 한다. 원 안에는 두 개의 소주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령강림절기’가 있다. ‘믿음의 달력’은 신앙생활에서 시간순례를 가능하게 한다.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가장 큰 기준은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해마다 바뀌는 이동절기이기 때문에 춘분을 시간의 나침반으로 사용한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춘분 지나 보름 직후의 일요일’을 부활주일로 제정한 바 있다.
해마다 느끼는 경험이지만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참 속절없이 흐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2월에 건 두툼한 달력이 밑바닥이 보일만큼 달랑거리는 것은 ‘마음의 달력’이 느끼는 감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속도계는 점점 빨라진다. 이러한 ‘마음의 달력’은 심리적 시간인가 싶더니 물리적 시간이고, 우주의 시간이었다. 다만 흔들리는 세월 속에서 시차에 적응하는 것이 상책인가 싶다.
‘마음의 달력’은 종종 지체하거나 심지어 거꾸로 가기도 한다. 과거의 시간에 발목 잡힌 채, 미래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에 대한 미련이나,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다. 거꾸로 가려는 달력을 보면서 앞서 가는 시대를 역으로 되돌리려는 반작용을 느낀다. 마치 옛날 골목이발소의 그림들처럼 역사의 흐름을 액자 속에 가두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참 길기도 하고, 또 너무 짧기도 하다. 감쪽같이 흐르는 세월을 피할 수 없다면 그 흐름 위에 지혜롭게 올라타야 한다. 금쪽같은 시간의 주인은 소중한 기회를 날마다 선물로 받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