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일본의 침략전쟁이 만들어낸 결과물
얼마 전 군목으로 일하는 후배목사님과 만났다. 이야기 도중에 “요즘 군인들은 초코파이를 먹으러 교회오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등병조차도 40만 원 이상 월급을 받아 여유도 있고, 예전보다 PX출입도 자유로우며,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어서 배달어플로 다양한 음식을 위병소까지 배달시켜 찾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25년 전 군종병 시절에 초코파이 한 개를 먹으려고 예배에 참석했던 많은 군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세월이 많이 지났고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실감이 든다.
군대음식하면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와 건빵이다. 초코파이가 별로라 하니 건빵은 어떨까? 후배목사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잘 안 먹는다고 한다. 건빵의 보급도 훈련이 있을때나 되기 때문에 호기심에 먹는 정도이고, 어떤 병사는 먹지 않고 모아놓았다가 가족들에게 택배로 보내기도 한단다.
옛날 투박했던 건빵도 요즘에는 많이 변화했다. 쌀가루의 함량이 예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쌀건빵, 야채크래커와 똑같은 맛이 나는 야채건빵, 참깨건빵, 검은깨건빵, 땅콩 건빵 등 종류도 맛도 다양해졌다. 또 예전 사이즈는 크기가 커서 먹다가 남으면 버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절반 사이즈의 건빵도 나온다고 한다.
건빵은 사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을 목적으로 개발한 전투식량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침략전선이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넓어지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전투식량의 개발이 시급해졌다. 특히 전쟁터가 태평양까지 확대되면서 보급선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현지에서 식량조달이 불가능해질 때를 대비해 오랫동안 보관해도 쉬거나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이 필요했다. 이런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건빵이다. 일본 육군에서 처음 건빵을 개발할 때의 보존 연한은 최대 7년 보관을 목표로 했다.
건빵의 뿌리는 16세기 무렵 일본에 처음 전해진 서양의 비스킷이다. 포르투갈 선박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선원들의 식량이었던 비스킷도 함께 전해졌는데 남쪽 오랑캐들이 먹는 과자라는 뜻에서 남만(南蠻)과자라고 불렀다. 일본인이 처음 본 비스킷은 지금처럼 부드러운 과자가 아니라 건빵처럼 딱딱한 식품이었다.
비스킷을 처음 접한 일본의 봉건 영주들은 이 딱딱한 밀가루 과자를 전투식량으로 활용할 궁리를 한다. 그래서 남만에서 온 딱딱한 과자를 전투식량으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결과 1877년 일본 육군에서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중소면포(重燒麪包)라는 빵을 개발한다. 중소면포는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이다.
일본 육군은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건빵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다. 청일전쟁 때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식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일본 육군은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전투용 비상식량의 개발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으로 기술자를 파견해 유럽의 각국 군대의 군용식량을 연구하고 응용하면서 건빵의 전신인 일본군 고유의 중소면포를 개량해 나갔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건빵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1941-1945)을 일으키기 직전이다. 카와시마라는 육군 소장이 수첩만한 크기였던 중소면포를 개량해 지금의 건빵크기로 만들었는데 먹기도 편하고 휴대도 간편해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정착을 하게 된다.
현재 동북아 군대에서는 모두 건빵을 전투식량으로 채택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물론, 우리나라 군대뿐 아니라, 북한군대에서도 보급되고 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도 압축병간(壓縮餠干)이라고 하는 건빵종류를 전투식량으로 제공한다.
건빵에 들어있는 별사탕에 정력감퇴제가 들어있다는 루머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별사탕은 100% 설탕이다. 이 별사탕의 원형도 일본 전국시대 말엽에 포르투갈에서 전래되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별사탕 자체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넘어온 것이다. 건빵과 함께 별사탕을 먹는 것도 일본에서 전해진 방법이다. 별사탕이 침샘을 자극해 계속 침이 나오기 때문에 퍽퍽한 건빵을 먹기 편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