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발자국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자연은 선생이요, 사람은 학생이다”라고 하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하나님은 성경에만 복음을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나무들, 꽃들, 구름들, 별들에도 기록하셨다”고 말한 것에 비하면, 세계교회가 창조절기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 때늦다.
과연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오늘의 교회는 창조적인가? 한국교회의 환경지킴이로 사역해온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내건 ‘녹색교회 다짐’ 열 가지 선언을 살펴보자. 과연 우리 교회와 가정의 녹색점수는 얼마인지 따져볼 일이다.
“만물을 창조하고 보전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나님 안에서 사람과 자연이 한 몸임을 고백한다. 창조보전에 대하여 교육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친환경적으로 키운다. 환경을 살리는 교회 조직을 운영한다. 교회가 절제하는 생활에 앞장선다. 생명밥상을 차린다. 교회를 푸르게 한다. 초록가게를 운영한다. 창조보전을 위해 지역사회와 연대한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걸을 때 땅에 발자국을 남기듯, 사람의 활동은 물론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말한다. 해마다 증가하는 화석연료 사용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것은 가계부만이 아니다. 지구촌은 예외 없이 재난을 겪고 있고, 더 심각한 위기에 맞닿아있다. 호주의 사회학자 데버러 럽던은 “인류의 위험은 자연적인 것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변해왔다”고 하였다.
‘탄소발자국’은 2006년 영국 의회 과학기술처(POST)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소비하는 제품에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표시는 무게 단위인 ‘kg’ 또는 우리가 심어야 하는 나무 수로 나타낸다. 하루 동안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계산하고 또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도 알려주기 때문에 ‘그린 마인드’를 품게 한다.
예를 들어 종이컵의 경우 무게는 5g에 불과하지만, 탄소발자국은 두 배가 넘는 11g이다. 한국인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종이컵 약 120억 개는 탄소발자국으로 환산하면 13만 2000톤이다. 이 같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4,725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나무 한 그루씩 심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비슷한 용어로 1996년, 캐나다 경제학자 마티스 웨커네이걸과 윌리엄 리스가 개발한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란 개념도 있다. 인간이 자연에 남긴 영향을 발자국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에게 의식주 등을 제공하기 위해 생산, 소비, 폐기에 드는 비용을 토지로 환산하여 개인과 공동체가 일상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토지의 총 면적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생태발자국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기본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1인당 평균 면적은 1.8㏊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 면적이 넓어지는데, 면적이 넓을수록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놀라운 것은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20%가 세계 자원의 86%를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을 기준으로 평균 면적을 넘기 시작하였고, 녹색연합이 200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생태발자국은 4.05ha이 이르렀다. 한국인의 생태발자국은 지구 시민의 평균을 훨씬 뛰어 넘는다. 지금 우리식대로 산다면 지구가 2.26개 있어야 한다. 지구를 넓힐 수 없다면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김종철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가난함은 ‘다르게 욕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린 가난한 마음, 곧 녹색 마인드는 특별한 기념주일에만 상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 년 365일 지혜로운 소비자로서 나를 향한 고백과 다짐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래야 창조질서 회복이 가능하다. 과연 나는 탄소발자국을 지우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는가? 모름지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고백하는 모든 교회는 녹색 발자국을 함께 걸아야 한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