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모두 한가위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한가위는 음력 8월의 보름날입니다.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를 뜻하므로 한가위는 ‘8월의 가운데에 있는 달이 크게 부풀어 오른 날’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 뜰 위에 찾아온 한가위 큰 달을 어떻게 맞이하셨는지요? 한가윗날 밤 제가 머물렀던 세종시에는 세찬 비가 와서 달맞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수요예배 전 찬양 인도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멘트가 나와 버렸습니다. “한가위 명절에 달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 달빛이 어디 갔나 했더니 명절 마지막 날에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는 여러분들의 밝은 얼굴에 있었네요!”
지난여름 휴가의 백미는 뜻하지 모양으로 우리 가족을 엄습하듯 다가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가 군복무를 했던 강원도 고성 바닷가를 찾아 송지호 해변에 있는 숙소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아침 일출을 볼 심산으로 바다로 가득 채워진 창이 넓은 방을 처음 보았을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잠깐 사이에 밤이 되어 바람과 파도가 가라앉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잠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깜깜했던 바다 위 하늘에 누군가가 손끝에 침을 발라 뚫어 놓은 것만 같은 거친 구멍이 생기더니 암막 커튼과 같은 하늘 밖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유정란의 진노란 노른자 색이었는데 그 모양도 점점 그리되어갔습니다. 일출만 여러 번 보려했지 바다 월출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그저 달달 외우기만 했던 구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라고 노래했던 송강 정철이 약 450년 전 이 바다에서 무엇을 본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다도 숨죽이며 동요하듯 그 신비한 빛을 잔잔한 파도 속에 머금습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외줄을 그리며 비추인 달빛은 그 바닷가의 모든 존재들을 비춥니다. 이리 보아도 나를 향하고 있고 저리 숨어 보아도 나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날 밤 달빛은 신성한 마음으로 달을 맞이한 한 사람만을 위한 달빛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줍은 것인지 겸손한 것인지 자신의 빛을 감추며, 중천 위로 떠올라도 여전히 작은 별빛 하나 지우는 법 없이 밤하늘과 어우러집니다. 그마저도 조심스러운지 기회만 되면 “상서로운 달빛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듯 숨습니다.”
샛별이 돋아 오를 때까지 곧바로 앉아서 밝은 달을 바라보니,
흰 연꽃 같은 달을 누가 보내셨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다른 사람 모두에게 다 보이고 싶구나.
...
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는데, 바다 끝인들 어찌 알겠는가?
밝은 달이 온 세상에 아니 비추이는 곳 없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비록 기독교가 전파되기 오래 전에 쓴 글이지만 “흰 연꽃 같은 달을 누가 보내셨는가?”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빈자리를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적 영성을 의미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다른 사람 모두에게 다 보이고 싶구나!”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만난 후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했던 빌립처럼 하나님의 신비를 마주한 사람에게 드러나는 당연한 현상과도 같습니다. “깊이를 모르는데, 바다 끝인들 어찌 알겠는가?”라는 절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적 간극을 의미하지만 이어지는 관동별곡의 마지막 구절은 그 간극을 뚫고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밝은 달이 온 세상에 아니 비추이는 곳 없다”
명절 때마다 티브이에서 울려 퍼지는 ‘달타령’은 사뭇 흥겨워 보기기는 하나 오히려 달을 향한 우리민족의 고상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류의 흔적마저도 지워버리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제가 참으로 괴로워하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첫 구절만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그 여름휴가의 마지막 밤에 저는 가족득과 함께 송강선생이 바라보았던 그 달을 본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편 72편을 노래한 시인이 바라보았던 달도 그 달밤의 달과 같은 달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달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꿉니다.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시편 72:7)
부디 이 땅에 정의가 꽃피고 평화가 넘치기를 저 달이 다 닳도록 간절하게 빕니다. 달에 관한 노래는 제가 소개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베토벤이나 드뷔시의 피아노곡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달의 노래’도 언젠가는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슈베르트는 ‘An den Mond/달에게’라는 제목으로 네 곡의 가곡을 남겼는데 괴테의 시와 횔티의 시에 각각 두 곡 씩 선율을 붙였습니다. 슈베르트가 얼마나 달을 사랑했으며 고독한 사람이었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 수많은 아름다운 달에 관한 음악 가운데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은 노래는 김태오 시, 나운영 작곡의 ‘달밤’입니다. 김태오 시인은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의 정서가 파괴되던 시절에 아름답고 소박한 동시 보급에 앞장섰던 분이였습니다. 중앙대학교 재직 시 1939년 흑석동 자택에서 책을 읽다가 촛불을 끄자 휘영청 창문이 밝아 오고 달빛이 찾아옵니다. 시인은 그 때의 시심을 시로 남기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한국 작곡가 나운영 선생님은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시인으로부터 이 시를 전해 받고는 그에 버금가는 명곡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일본풍의 가곡을 작곡하고 어설프게 서양 음악을 흉내 내었던 시절에 서양음악의 언어에 완전히 녹아든 한국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감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견줄 만한 한국 가곡의 명곡을 스물다섯 살 나운영 선생님은 1946년에 작곡했습니다.
달에 관한 노래는 유달리 피아노와 잘 어울립니다. 또한 작곡가가 의도한 ‘한국적 월광’의 화성적 울림을 가장 잘 살려내는 것은 피아노입니다. 그래서 원곡 그대로 피아노 반주로 녹음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달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달과 닮은 소박한 정서가 살아 있는 노래가 너무나 독보적으로 아름답기에 소프라노 신영옥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송강선생님의 한 마디가 여전이 마음을 울립니다. “밝은 달이 온 세상에 아니 비추이는 곳 없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그 달빛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저 달이 다 닳도록.
등불을 끄고 자려 하니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문을 열고 내어다보니
달은 어여쁜 선녀같이
내 뜰 위에 찾아오다.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밤을 이 한밤을
얘기하고 싶구나
어디서 흐르는 단소소리
처량타 달 밝은 밤이오
솔바람이 신선한 이 밤에
달은 외로운 길손 같이
또 어디로 가려는고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밤을 이 한밤을
동행하고 싶구나.
https://youtu.be/DyEznKDmn_g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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