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글이와 환경호르몬
넷플릭스 ‘DP’ 드라마가 인기라 해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첫 장면 1-2분을 보자마자 화면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종료시켜 버렸다. 첫장면은 주인공 안준호(정혜인분)가 자대배치받자마자 말년병장에게 폭행과 갈굼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제대한지 어느덧 26년이 되었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내 머리속 어디엔가 차곡히 묻어두었던 (다시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들을 소환해내었다. 화면을 멈춰버린 이유는 갑자기 분노와 짜증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이런걸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하던가?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동일한 반응을 경험한 이들이 많았으리라.
하루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한 번 드라마를 이어보게 되었다. 다행히 1편을 지나 2편으로 넘어가서 한호열상병(구교환분)이 등장하고서부터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어찌 그리 연기들을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하는지.. 배우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2화중에서 아버지군번인 한호열상병이 아들군번인 정혜인 이병과 함께 신라면뽀글이를 맛있게 먹는장면이 나온다. 한호열상병이 뽀글이를 먹으면서 안준호이병에게 “뜨거운 물에 라면 지방이 녹고 그 지방에 라면 봉투가 녹으면 환경호르몬이 나온느거야, 몸에 엄청 안 좋지. 근데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안먹을수가 없어. 어쩌면 환경 호르몬이라는 거는 맛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한다.
뽀글이를 해 먹으면 한호열 상병의 말대로 환경호르몬이 나오는걸까? 과연 건강에 해로울까? 결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환경호르몬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환경호르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호르몬이 뭔지 알아야겠다. 호르몬은 수용성 단백질이 주성분인 물질로 동, 식물 안에 모두 포함되어 생명활동을 원활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환경호르몬은 인체나 동,식물 안에 침입하면 호르몬 기능을 저해시키는 부정적인 호르몬으로 식수, 공기, 음식 등을 통해서 인체에 침투하며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 환경호르몬이라는 이름은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산업 활동의 결과로 생긴 오염물질이 몸 안에 들어와 내분비계 이상을 일으킨다고 해서 붙여졌다.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은 포름알데이히드나 다이옥신이 있다
팩트부터 말하자면 봉지라면 뽀글이는 환경호르몬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식약청에 따르면 다층 식품 포장재를 구성하는 재질 중에서도 식품 포장면(라면이 들어있는 은색의 공간)은 폴리프로필렌이 사용되는데 폴리프로필렌은 물에 녹지 않는다. 폴리프로필렌의 녹는점은 160도이다. 물은 끓는점이 100도C이다. 끓는물을 아무리 봉지에 부어도 이론적으로는 녹지 않는다.
또한 라면봉지 안쪽에는 가소제가 첨가되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소제는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이다. 장기간 인체와 접촉하면 내분비계를 교란한다는 논란으로 인체 유해물질로 분류됐다. 커피믹스 봉지를 스푼 대신 커피를 젓는 용도로 사용할 경우 인쇄면에 코팅된 필름이 벗겨지면서 인쇄성분이 커피에 남기에 뽀글이보다 커피믹스 봉지를 더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혹시 뽀글이를 해 먹는다면 환경호르몬 염려 없이 편하게 먹어도 된다. 오히려 용기가 발포스티로폼으로 된 컵라면은 환경호르몬이 문제가 된다. 뜨거운 물을 부은 뒤 10분 뒤쯤부터 환경호르몬이 배출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종이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을 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하지만 역시 유해물질은 나온다.
얼마 전 감리교 군목후배와 대화해보니 요즘 군인들은 초코파이도 잘 안 먹는다고 한다. 월급이 많이 올라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와지고 PX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이전보다 편하게 사먹을 수 있어서 초코파이 먹으려고 교회에 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 군인들에게 뽀글이가 맛있게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 컵라면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비빔라면의 종류 또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김에 거의 이십 년만에 뽀글이를 해 먹어 보았다. 군대에서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뽀글이가 제대한 뒤 먹어보니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먹어보니 역시 맛은 별로였다. 내 입이 고급이 되어서일 꺼다.
DP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머릿속에 28년 전 인제 원통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들은 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졌다. 힘들었지만 군생활의 추억이 여전히 새록새록 하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