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읽기
톨레레게 말씀읽기는 요즘처럼 ‘혼족’이니, ‘혼밥’과 ‘혼려(旅)’가 유행인 시대에 훌륭한 1인 경건을 위한 묵상 프로그램이다. 날마다 주어진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 일용할 기도와 함께 주님의 기도로 마무리하면 산뜻한 1인 예배가 된다. 거룩한 ‘혼배’인 셈이다. 게다가 본문에서 나만의 요절을 선택하는 과정은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게 하고, 오늘 하루 내가 명심할 주제로 삼게 한다. 해마다 늘어가는 요절은 나만의 성구(聖句)집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서 순간순간 기도생활이 영적 호흡이라면, 매일 성경을 읽는 일은 일용할 영적 식사에 해당된다. 식탁에도 규모 있고,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하다. 시중에는 성경이해를 위한 가이드북이 제법 많아졌다. 일상에서 경전읽기의 전례가 점점 뿌리내리는 일은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성경통독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신앙의 성장이든, 교양 있는 생활이든 그리스도인으로서 저 마다 경건한 이벤트를 계획하는 일은 아름답다. 가장 흔한 나 홀로 프로젝트는 성경통톡이다. 대부분 교회는 성경통독과 성경필사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눈에 잘 띄는 게시판에 도표를 만들어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통독운동에 대한 독려가 마치 요즘 트렌드인 ‘포인트 쌓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성경통독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경험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구약과 신약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신세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변증가라 불리는 달라스 윌라드의 고언에도 귀 기울일 이유가 있다. “1년 동안 성경의 모든 단어를 눈앞에 스쳐지나가게 하는 것보다 딱 열구절만 내 삶의 본질로 바꾸는 편이 낫다.” 통독의 횟수도 중요하지만, 단 몇 절이라도 그 가르침대로 사는 일이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성경전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우선 ‘일용할 말씀읽기’는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성경통독운동의 모델 중 하나가 ‘톨레레게 성경통독운동’이다. 이름의 힌트를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찾았다. 젊은 어거스틴이 겪은 고민과 갈등, 방황 그리고 회심을 담은 참회록은 극적인 회심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회심은 일회적 사건이 아닌 오랜 세월동안 준비된 것이었다. <고백록> 제8권 12장에 있는 내용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다. 그 말소리가 소년의 것인지 소녀의 것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계속 노래로 반복되었던 말은 “Tolle lege, Tolle lege”(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성서를 펴서 첫눈에 들어 온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명령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사도의 책을 집어 들자마자 펴서 내 첫눈에 들어 온 구절을 읽었다...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 의심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다.”
어거스틴이 집어 들고 읽은 말씀은 로마서의 한 구절이었다(롬 13: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은 어거스틴의 생애에 전환점을 가져왔고, 분수령을 이루었다. 주후 386년 8월 여름이었다. 정돈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 때문에 너무 답답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던 어거스틴이었다.
톨레레게 진도표는 성경 1,189장을 하루 서너 장씩 나누고,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사’란 관점에서 365가지 소주제로 붙였다. 이를 1년 365일 동안 ‘혼톨’을 반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톨레레게의 장점은 어거스틴의 생생한 체험에서 힌트를 얻어 날마다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려는 뜻으로 요절 하나씩 꼽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요약하면 ‘음성을 듣게 하소서’, ‘말씀을 읽게 하소서’, ‘내 삶을 고쳐주소서’이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방식대로 성경을 사랑할 것이다. 꼭 통독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 헤른후터 공동체의 성구집 <말씀 그리고 하루>(Losungen)를 묵상하는 이들이든, 가정예배서 <하늘양식>이나 <다락방>이든 그 무슨 말씀을 읽더라도 그 삶에 톨레레게의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하면서 말씀을 접하면 좋겠다. 자신에게 차려주는 최고의 경건한 ‘혼밥’이 될 것이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