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의 전쟁 3탄
불볕 더위가 기승이다. 얼마나 뜨거운 볕인지 아침 점심 저녁 불판 위에 서 있는 듯 하다. 이런 더위 앞에서는 모든 일의 의욕이 꺽이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그저 더위 속에 멍하니 앉아있는 날이 늘었다. 하루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어도 덥고, 너무 더워 잠깐 에어컨을 켜나 희망온도를 29도에서 30도로 맞춰놓는다. 그래도 얼마나 더운지 그 온도에서도 사무실이 시원하다. 물 만난 고기요,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시원하다. 선풍기 10대 이상과 맞먹는 시원함이다. 그러나 전기세를 생각한다면 그런 호사도 잠시다. 다시 선풍기 앞에 서서 잠시나마 누린 시원함을 날려보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풀베기다. 3주 전 마지막으로 내린 비 이후 밭에는 풀이 작물의 키를 넘었다. 콩인지 풀인지 모를 정도다. 콩 심은 두둑과 풀이 자란 헛골을 아는 농부가 아니라면 콩이 풀이요, 풀이 콩이라 말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뙤약볕 아래 콩이나 풀이나 모두 기세좋게 올라가고 있음은 좋은 일이나 콩들에게 더 기운을 북돋아 주려면 콩과 콩 사이의 풀들을 모조리 제거해주어야 한다. 양분도 콩에게 더 갈 수 있게 하고, 바람이 지나갈 길을 터주어 숨을 쉬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 풀을 베야 하는 이유다. 그런 연유로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저녁, -예년이라면 오후 4시 경에 나갔던 밭을 올해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저녁 6시가 넘어도 뜨거운 열기가 지속되는 터다.- 느즈막이 일어나 콩밭으로 향한다.
콩밭의 김을 맨지 벌써 서너 번은 되는거 같다. 한바퀴 돌고 오면 다시 콩만큼 자란 풀과 연거푸 씨름을 하던 시간들이 이제는 이력이 났는지 나의 낫 베는 속도가 풀 자람새를 뛰어넘고 있었다. 솔직히 더이상 풀의 자람 속도를 이길 힘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하루 3개 정도 김을 매고 그 다음날에는 그곳에 부직포를 덮었다. 부직포를 덮는 이유는 첫째는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땅의 습을 잡아주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오늘의 작업 할당량을 채우고 난 뒤 남아있는 고랑을 세면 어두컴컴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두운 마당엔 한라와 냥이들이 나를 반갑게 맞는다. 이렇게 김을 매고 부직포를 덮는 작업이 엊그제 드디어 끝났다. 부직포가 모자라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새것을 살 것인지 아니면 밭 언저리에 개어 놓은 지난날의 부직포를 재활용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뜨거운 여름날 번거롭게 운전을 하고 시장에 나가는 것이 귀찮아 재활용을 택했다. 하우스 구석에 포개놓은 낡은 부직포를 한 장 거두어 깔았다. 다행히 길이도 그렇거니와 폭도 모자람없이 딱 맞았다. 4월에는 비닐을 덮었다. 5월과 6월은 풀과의 전쟁을 두 번 치렀다. 그리고 7월 한달 내내 풀과의 3차 전쟁을 치르고 부직포를 완전히 덮었다.
마음이 어찌나 홀가분하던가. 비록 비닐하우스의 들깨밭도 풀을 베어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 들깨밭의 풀은 하루 날잡아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산이다. 콩밭의 김을 매는 수고를 모두 마치고 나자 그제야 다른 작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추가 익어가는 것도 보이고,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도 보였다. 상추는 지난번 내린 비로 녹아내렸다. 큰일을 마치고 나니 작은 일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하나둘씩 매듭을 푸는 여유가 생겼다. 키가 자라고 옆으로 퍼지는 고추는 세 번째 줄을 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토마토는 더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윗부분을 싹뚝 잘라주었다. 흐물흐물 쓰러진 상추대는 꺽어서 한쪽에 거름으로 모아놨다. 제때 해주어야 할 것들이 풀과의 전쟁을 마치고 나니 해줄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올해는 농사를 짓는데 좀 부지런했다. 몸을 돌보면서 작물들을 돌보는 요령도 터득했다. 이번에 몇 번의 풀을 베고 부직포를 깔면서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배웠다. 매일 매일 땀으로 목욕을 하는 날들이었지만 그런 가운데 흙을 만지는 기쁨이 커져가고 있으니 진정 나는 농부 하나님의 자녀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 기쁨은 풀과의 전쟁으로 첫 1승을 하고 돌아오면서 전하는 승전가이기도 하다. 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