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는 왜 시금치를 먹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20-30대에 잘 먹지 않았던 나물들이 입에서 당긴다는 것이다. 점점 나물이 맛있게 느껴진다. 나물요리는 그리 어렵지 않다. 깨끗이 씻고 데친 후 간장과 다진 마늘과 참기름만 있으면 나물 본연의 향과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고인이 된 임지호셰프는 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알고 보면 다 이름 있는 식물로 대부분 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고 했는데 들판의 잡초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마트에 가면 다양한 나물들을 구할 수 있다.
이틀 전 마트에 가서 고춧잎, 바라깻잎, 시금치, 비듬나물 등 몇 가지 나물들을 구입했다. 씻고 데치고 찬물에 헹군 후 두 손으로 꽉 짜서 양념에 무쳐놓으면 모양과 색깔은 초록색으로 비슷하지만 각자의 개성 있는 향과 건강해지는 맛을 내뿜는다. 따끈한 밥에 여러 가지 나물들과 고추장, 참기름을 섞어서 비벼먹으면 아주 근사한 비빔밥이 된다. 여러 나물 중에서 오늘은 시금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금치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어린 시절 만화영화로 즐겨보았던 ‘뽀빠이’다. 아마 요즘 어린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위기에 처한 뽀빠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전에 시금치 통조림을 먹었다. 왜 시금치일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뽀빠이를 그린 만화가 엘지 크라이슬러 시거(Elzie Crisler Segar)가 왜 시금치를 선택했을지에 대한 가장 유력한 가설은 시금치에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양성분인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사실은 시금치에 철분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왜 당시에는 시금치가 철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알려진 것일까?
시금치에 대한 오해는 1870년 독일인 화학자 에릭 본 볼프의 연구 때문이다. 당시 볼프 박사는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을 수학적 실수로 10배나 많게 계산했다. 실제 시금치에 함유된 철분 함유량은 100g당 3.5밀리그램이나 이를 35밀리그램으로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1937년까지 소수점이 잘못 찍힌 사실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시금치에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철분 성분이 무척 많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잘못된 과학적 연구가 대중적인 오해를 낳게 된 것이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게 된 이유도 이런 세간의 잘못된 오해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는 덕분에 전 세계적인 시금치 열풍이 일어났다. 1930년 대 미국 어린이들이 야채를 잘 먹지 않았었는데 뽀빠이 덕분에 미국에서의 시금치 소비량이 30%나 증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뽀빠이가 처음부터 시금치를 먹고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뽀빠이의 특징은 시금치 통조림을 먹으면 힘이 솟는다는 것과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고 힘을 냈다고 한다. 그것도 파이프 담배가 아닌 시가였다. 뽀빠이는 왜 담배를 피우고 힘을 냈을까? 뽀빠이가 시가를 문 이유는 최초의 작가 때문이다. 만화가 이름이 크라이슬러 시가(Segar)였기에 자기 이름을 따서 뽀빠이가 시가를 물고 있는 것으로 그렸고, 여기서 힘을 얻는 것으로 묘사를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왜 시금치 통조림으로 바뀌었는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에서 담배 피우고 힘을 낸다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시금치의 효능이 과장된 바는 있으나 우리 몸에 좋은 것은 채소임은 분명하다. 시금치는 비타민의 왕이다. 야채 중에서 엽록소와 각종 비타민 함량이 가장 많은 잎채소이다. 엽산, 칼슘 및 철분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항암효과와 탈모예방, 변비와 빈혈예방, 동맥경화 억제, 눈 건강에도 좋다.
1577년(선조10)에 최세진에 의해서 편찬된 〈훈몽자회〉에 처음 시금치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시금치는 조선초기부터 재배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는 주로 나물무침이나 된장국 국거리로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어린 시금치 잎을 샐러드용으로 사용하거나 볶음이나 수프 등 지중해식 조리법에 많이 사용된다. 푹 쪄서 크림소스에 버무린 크림 스피니치나 시금치 피자도 인기다.
시금치는 채취하여 하루만 지나도 영양분이 반 이상 감소되는 약점이 있다. 특히 시금치의 비타민 C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조리 시 살짝 데쳐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필자가 오늘 맛있게 먹은 시금치 요리는 시금치계란볶음이다. 시금치는 기름에 살짝 볶아먹으면 영양흡수가 훨씬 효과적이다. 계란스크램블에 시금치볶음을 섞은 후 참기름과 후추를 더해서 밥에 올려먹으면 아주 맛이 있다. 오늘 저녁은 시금치 요리를 추천하는 바이다.
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