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1등 전도법
해마다 유월이 오면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한다. 만약 우리 현대사에서 평화의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불행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어느 사람, 어느 민족의 전유물이 아닌 온 인류가 누릴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기의 웃음에서 평화를 떠올리고,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에서 평화를 연상하듯, 평화는 누구나 가장 가까이 존재하길 원한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평화를 증거 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존 브로우더스는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하였다. 평화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첫 인사는 평화에 대한 안부였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문을 걸어 잠근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21)라고 문안하신다. 같은 말로 두 번이나 안심시키셨다. 십자가의 환난을 겪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 그 자체였다. 이렇듯 평화는 무덤을 찾아 나선 여자들(마 28:9)과 집 안에 숨어있던 남자들 모두에게 필요한 부활신앙이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처방전을 주신다. “성령을 받으라”(요 21:22)는 생전에 이미 예고하신 약속이었다. 예수님의 평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일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오직 성령만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알게 하며, 내 삶과 세상에서 평안과 평강을 누리게 한다.
성령의 열매 9가지는 그리스도인다운 인격과 체질을 보여준다. 열매들은 부드러운 듯하나,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소프트 파워로 가득하다. 한 마디로 제자로서 살아가야할 성품이고, 인격이며, 윤리이다. 성령의 9가지 열매 가운데 세 번째는 평화이다. 평화의 근거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평화는 성경 전체를 품고 있는 개념이다. 성경은 평화의 옷을 입고 있다. 평화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샬롬’은 파생어를 포함하여 구약에서만 모두 482회 등장한다. 평화는 우정, 친밀감 따위 좋은 인간관계는 물론 행복, 번영, 만족, 건강, 문안 등 개인적인 차원과 함께 평화조약, 화목제 등 공적인 영역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 온전한 언약관계를 의미한다.
유대교 랍비들은 ‘샬롬’을 가리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 중 으뜸을 꼽으라면 바로 평화의 하나님이다. 평화를 위해 힘쓰는 우리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샬롬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평화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다. 그리스도인은 ‘평화 마인드’를 지녀야하고, ‘피스 메이커’로 살아야 한다.
사실 말만으로 해결되는 평화는 별로 없다. 평화는 구체적인 언어요, 실천이어야 한다. 산상설교에 따르면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는 사람(마 5:41)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 사람(마 5:42)이 누릴 복이다. 유네스코(UNESCO) 헌장은 ‘평화의 옹호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먼저 건설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 안이든, 세상 밖이든 평화는 우리 시대 1등 전도법이며, 우리 공동체와 사회를 변화시킬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다.
송병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