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게시판
바이블25
크리스천라이프
커뮤니티
갤러리
성경/찬송가
지역정보
로중
전도
뉴스
QT
전도모음
Cristian YouTube
     
커뮤니티
칼럼
명언묵상이미지
하늘양식
오늘의책
십자가
명상
영상
설교
말씀
독자편지
독자편지 [120]
 
 
 
     
 
 
 
작성일 : 21-06-13 02:00
   
내 안의 속사람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3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74 [141]

 

내 안의 속사람

 

사람살이 방식을 단순히 이분화하면 높이를 추구하는 삶과 깊이를 추구하는 삶으로 나눌 수 있다. 쉽게 높이를 현시적이고 세상적이라고 한다면, 깊이는 내면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애초부터 생장점이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흔들리는 높이와 이를 붙들려는 깊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게 마련이니, 무 자르듯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깊이를 추구하는 삶은 역사적으로 남다른 선택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수도회와 신앙공동체 운동이 대표적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발전한 원동력의 하나로 수도원운동을 손꼽았다. 대개 주후 6세기 베네딕트 수도원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이전에도 수도자와 순례자들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일정한 처소 없이 생활한 반면, 비로소 베네딕트 수도원의 정착을 통해 교육과 훈련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교과과정은 기도, 공부, 노동으로 요약한다. ‘기도하는 사람이 공부할 때 종교의 미신화를 막고, 공부하는 사람이 노동해야 학문의 우상화를 방지하며, 노동하는 사람이 기도함으로써 직업이 신성시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이 노동함으로써 종교가 생활화하고, 노동하면서 공부할 때 노동의 기술화가 가능하며, 공부하는 사람이 기도할 때 성숙할 수 있다. 이것은 베네딕트 수도원이 그리스도교의 깊이를 일궈낸 방식이다.

 

으레 수도원하면 세속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얻고자하는 신앙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수도원(monastery)이란 이름에는 헬라어 ‘monos’ 고독한’, ‘홀로라는 어원이 담겨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딕트 수도원은 산꼭대기에 세워졌고, 이집트 카타리나 수도원은 시내산 아래 광야 한가운데 위치하며, 영국이 자랑하는 아이오나 수도원 역시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에 자리 잡았다. 공통적인 것은 한결같이 고독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도사들도 존재하였다. 탁발수도회가 좋은 보기이다. 그들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재산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구걸이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마을과 도시를 순례하면서 전도와 수도생활을 하였다. 탁발은 중세기 교회와 사제들의 부유한 생활과 타락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프란치스코회와 스페인과 프랑스를 바탕으로 한 도미니코회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옷 색깔로 서로를 구분하는데 프란치스코는 흰색, 도미니코회는 검은색을 입는다.

 

독일 남부의 마울부론(Maulbronn) 수도원은 마을 한가운데 있어 더욱 유명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마울부론은 알프스 이북에서 최고의 수도원이란 명성을 자랑한다. 1098년 설립된 시토(Cistercian) 수도회에 속하였는데, 시토회는 성 베네딕토 규칙을 보다 엄격하게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천 년 전의 수도사들은 산꼭대기나, 인적이 드믄 외딴 곳이 아닌 동네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울부론 마을 한가운데에 구중심처를 만들었다. 훗날 헤르만 헤세가 다닌 학교로도 알려져 있다.

 

내 안에서 추구하려는 깊음은 굳이 고독한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꼭 회색빛 수도복을 입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자신이 사는 일용할 공간에서 빛과 어두움, 소리와 침묵, 기도와 노동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일상 속에서 기도와 노동 그리고 공부를 통해 내면의 깊음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높이와 깊이는 모든 사람들의 양면적인 삶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욕망의 실현을 위해 날마다 힘겨운 까치발을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 삶이 우려내는 쓴맛을 통해 속사람의 깊음 속으로 두레박을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 자신은 그 속사람이 누리는 깊음과 충만함이 있는지, 때때로 자문할 일이다.

 

 ​송병구/색동교회 


 
   
 

 
Copyright(c) 2012 http://bible25.bible25.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