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발 (2019)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다.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에게 오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의 유명한 찬양. 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랑은 단지 하나님께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말은 모든 사랑의 시금석과도 같아 사랑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규칙처럼 적용되는 말이 되었으니 말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쓰면 쓸수록 무뎌지는 것처럼 이 말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많은 좌절을 안겨주는지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은 매우 드물다. 권우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은 바로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유난히 까치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살 딸 지후에 대해 엄마는 까치발로 걷는 것이 뇌성마비의 징후일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의사로부터 듣게 된다. 영화감독인 엄마는 바로 그때부터 아이와 자신을 기록한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혹시라도 장애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엄마의 죄책감에 땔감이 된다. 엄마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모임을 기획하고 촬영하면서 거기서 어떤 위로와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지 탐색한다. 그러나 이 탐색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실패하고 만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나라는 단순한 진실을 피할 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엄마는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려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추함을 드러내는 8년 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끊임없이 딸에게 까치발로 걷지 말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말하는 엄마의 말에는 불안과 초조, 나아가 죄책감까지 묻어 있다. 하지만 마침내 엄마는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였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는 아이의 불안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에서 나의 불안을 받아들이는 긴 세월의 이야기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하여 괴물 같은 엄마에 반성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깨달음에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본인이 인터뷰했던 장애인 당사자의 말이었다. 그 장애인 당사자는 평생 동안 엄마에게 듣고 싶었으나 결국 듣지 못했던 말을 이렇게 소개했다. “괜찮아.”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엄마는 왜 딸 지후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까치발은 아이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의 말처럼 이 모든 이야기는 괴물 같은 엄마의 반성 이야기이다.
딸을 위한다고,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딸 지후에게 까치발에 대해 물어본다. 넌 어때? 그러자 딸은 대답한다. 좋다고, 편하다고. 영화 속에는 리오넬 르 네우아닉의 동화 『엄마가 된 마녀 루시』가 등장한다. 우연찮게 구했는데 이상하게도 딸이 무척 좋아한 동화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화는 마녀 루시가 천사인 딸 엠마를 낳고 둘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영화 거의 마지막쯤 동화책의 다음 구절이 낭독된다. “별별 일을 겪고 난 후, 루시와 엠마는 마법사의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엠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굉장한 솔직함 속에서 마침내 엄마의 성장과 받아들임을 보게 되는 일은 몹시 따뜻하다. 영화 속에서 엄마가 겪었던 현실에 대한 부정, 지나친 낙관, 지나친 비관, 죄책감, 불안, 이 모든 것이야말로 실상 ‘있는 모습 그대로’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감독은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일에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의 말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일에의 필사적인 노력, 그러고 보니 예수께서 십자가로 보여주신 모습도 바로 이 모습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