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쉼을 위한 노래, G 선상의 아리아
몇 주 전 토요일, 교회 청소년부의 프로그램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했는데 ‘JESUS-STAY’라는 전체 프로그램의 이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저스-스테이’는 ‘윤 스테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예수 안에 머무르며 쉼을 누리는 것을 의미 한다고 담당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즘 트렌드는 ‘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아오기도 했고 어차피 코로나로 인하여 먼 곳으로 다니지도 못하니 잘 쉬는 쪽으로 관심이 쏠린 것 같습니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예전에는 몇 박 며칠 동안 전국을 찾아다니고,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니거나, 한 없이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어느 날 한 영화배우가 TV광고에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고 외치더니 조금씩 쉼, 스테이, 머무름을 테마로 하여 조용한 일상이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쉬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들의 삶과 신앙의 영역에서 우리의 몸과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의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 부르셨습니다. 세상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는 모르는 사람과의 평범한 인사도 ‘수고 하세요’라고 합니다. 서로 이렇게 인사할 때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 수고의 연속이네요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죠. 잘 버티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것은 우리의 운명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수고하지 않고 짐이 없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해서나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았으니 편안히 쉬세요’라고 말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우리를 ‘다 내게로 오라’ 라고 하시며 당신의 품으로 초청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진정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수고를 줄이고 짐 진 것을 내려놓기 위해 별별 일들을 다 합니다.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주식이나 비트코인 열풍이 그러합니다. 또한 자녀에게 만큼은 수고를 덜어 주고 무거운 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데 그 별별 일들이 또 다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먼저 사랑해 주셔서 그분께로 나아갔을 뿐인데 예수께서는 우리를 품어 주시고 그렇게 우리는 그의 품에서 참된 쉼을 누립니다.
저는 종종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전 존재적인 쉼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하염없이 넓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바다처럼 저 한사람을 완전히 품어 주는 느낌말입니다. 아쉽게도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불현듯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모든 생각과 감각과 영혼의 문을 열어 놓고 은혜와 사랑의 바다에 온전히 자신을 맡깁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노라면 저 멀리서 작고 가느다랗고 기다란 F# 음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이 흐름에 따라 저의 전 존재는 이색 저색 뒤엉켜 굳은 수채물감이 물에 닿듯 사르르 풀어집니다. 모든 음악은 어떻게든 고조되기 마련인데 이 곡은 하염없이 풀어지기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G 선상의 아리아’로 알려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의 두 번째 곡 'Air'입니다. 바흐는 그의 악보에 ‘Air’라고 기재했을 뿐 결코 ‘G 선상의 아리아’라는 오글거리는 이름을 붙인 적이 없지만 ‘아리아’라는 이름 때문에 이 음악이 오페라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흐는 같은 연도에 태어난 헨델과 달리 단 하나의 오페라도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Air’는 오페라의 아리아가 아니라 노래 혹은 선율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 음악 용어입니다. 일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이리시 민요 ‘아, 목동아/Oh, Danny Boy’의 원제목은 ‘런던데리의 노래/Londonderry Air’입니다. 아무튼 바흐가 왜 관현악 모음곡 3번의 두 번째 곡에 ‘Air’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관현악 모음곡’이라는 전체 작품의 특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G 선상의 아리아’가 들어 있는 바흐작품번호 1068번 관현악 모음곡의 악장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Ouverture-Air-Gavotte-Bourrée-Gigue
서곡(Ouverture)과 에어(Air)를 제외한 ‘가보트’, ‘부레’, ‘지그’는 오늘날의 ‘탱고’, ‘차차차’와 같이 모두 춤곡의 한 장르입니다. 악기 편성이 화려한 것으로 보아 바흐가 이 곡을 작곡했던 쾨텐이라는 도시에 큰 잔치가 열렸고 그 잔치의 하이라이트인 무도회를 위해 바흐가 여러 모음곡을 작곡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바흐가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은 춤을 위한 음악입니다. 바흐는 평생을 교회음악가로 살았지만 교회음악만을 작곡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었고 모든 이들의 삶은 신앙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춤곡 가운데 생뚱맞게 ‘Air’가 들어 있습니다. 바흐가 이 음악 앞에 ‘Air’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이 곡이 춤을 위한 모음곡 안에 들어 있지만 춤곡이 아니라 ‘듣기 위한 음악’ 혹은 ‘춤을 쉬며 또 다른 춤을 준비하는 순간’임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들을 위해 한바탕 춤곡을 작곡한 바흐였지만 그 와중에도 쉼을 누릴 줄 알아야 함을 그는 이 ‘Air’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듯합니다.
여러 가지 박자와 다양한 빠르기의 춤곡들처럼 우리 인생도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완전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때그때의 흐름과 속도에 맞추어 리듬감 있게 스텝을 하나씩 밟다 보면 인생이 춤이 됩니다. 신앙의 눈으로 인생을 관조할 수 있었던 바흐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곡을 인생이라는 춤곡들 사이에 넣고는 때로는 스텝을 멈추고 머무르며 쉴 줄도 알아야 한다며 미소 지으며 우리를 타이르고 있습니다.
이 아름답고도 위대한 음악이 단 한 페이지의 오선지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합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이기에 수많은 연주가 녹음되었지만 한 치의 서두름이나 드러내고자 함 없이 이 곡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려내며 격조 높은 연주를 들려준 아돌프 부슈(Adolf Busch, 1891~1952)의 연주를 추천합니다. 이 음악이 마음에 드신다면 프랑스의 재즈 피아니스트 자끄 루시에(Jacquea Loussier)의 연주로도 꼭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음악과 함께 좋은 쉼 누리시길...
조진호
https://youtu.be/0KhJMxAQ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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