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 모내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비가 내리는 듯 하다. 작물을 심고 적당한 때에 내리는 비라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은 비라면 마음만 뒤숭숭해진다. 최근에 내리는 비가 그런 마음을 들게 한다. 그리고 내렸다하면 소나기처럼 내리니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한다. 설마 작년과 같으랴 하는 생각이 정말 실현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비가 내리고 난 후에는 찬 기운이 솔솔 내려앉아서 아직도 나는 겨울 스웨터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달력은 유월을 준비하고 있는데 옷장은 여전히 지난 겨울옷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기거하는 집은 흙집이라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도 사는 시원한 공간인데 요즘 같이 일교차가 둘쑥날쑥한 때는 방바닥이 냉골이다. 카페트를 치웠다가 다시 방안 전체에 도배를 하였다. 음! 마음에 안드는 날씨다.
지난주 모내기 준비를 시작했다. 논 한켠에 들여놓은 모판의 부직포를 벗겨내었다. 맑은 물 가장자리에 초록색 어린모가 10~15센티 정도 잘 자라주었다. 공교롭게 내가 없는 때에 소속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150여 개 되는 모판을 논둑에 올려놓고 평탄작업을 하였단다. 미안한 마음이 어찌나 크던지, 거기다가 또 내가 없는 때에 목사님과 집사님 둘이서 논둑의 산발한 풀들을 예초했다고 하니 그 또한 얼만 미안한 마음이 크던지, 꼭 하루 남겨놓고 일정을 공지하는 목사님에게 괜한 뻘소리를 하였다. 사람이 미안하면 미안한 것으로 그쳐야 하는데 꼭 그 미안함을 남에게 전가시키려는 못된 습성이 내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가 여차하면 튀어나오려고 한다. 괜한 소리 하고 나서 꼭 후회하는 것도 못된 심성이다. 여하튼 지난주 나없는 사이 목사님과 사모님과 집사님이 모내기를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모내기 할 일정을 잡았다. 비가 오지 않고 나도 참여할 수 있는 요일을 찾았는데 수요일이었다. 그런데 이앙기를 해주시는 이장님이 비오지 않는 날에 복숭아 소독을 해야 한다면서 목요일로 일정을 옮겨달라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오늘 목요일 아침 8시에 논 앞에서 모이기로 하여 일찌감치 나갔는데, 어랍쇼! 하늘이 까맣게 변하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가늘고 짧게 이어서 굵고 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장님은 비가 좀 그친 뒤 시작하자고 하였다. 한참을 내리다가 소강상태가 되자 이앙기 운전이 시작됐다. 3년 전까지만 하여도 매년 이맘때면 감신대 신학생들이 와서 직접 손으로 모내기 실습을 하였다.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모내기와 아침과 새참과 점심을 먹으면서 공동체 체험을 수업 중 가장 기억나는 시간이 될 정도로 하였다. 그런 체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농촌에 관심있는 신학생들이 줄어들거나 없거나 하여 근 15년을 이어왔던 ‘농촌현실과 생명문화’ 강의는 2019년부터 열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 여파로 직접 손으로 모를 내는 모습도 사진 속에서나마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이앙기로 하면 일손이 많이 덜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시간도 엄청 줄어든다. 손으로 했을 때는 꼬박 하루의 시간을 쏟아야 했는데 이앙기로 했더니 불과 2시간도 채 안되어 끝났다. 우스갯소리로 역시 돈이 좋다고 하지만 그만큼 농촌도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 없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한편으론 씁쓸한 이야기다. 웬만한 농가는 집집마다 트랙터, 이앙기, 관리기, 두둑기 등 농사에 필요한 다양한 농기계가 있다. 일년에 얼마나 쓸까마는 이제는 이런 농기계가 없으면 농사 짓는 것이 참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처럼 없는 살림(?)의 농가는 돈을 지불하여 농사를 짓는다. 친환경으로 쌀을 얻는 자부심과 함께 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얻는 쌀이기도 하니 햅쌀의 그 맛이 더더욱 눈물겹지 않으랴!
비가 내리는 중이었지만 이앙기가 빠질 정도는 안되어 다행히 모내기는 잘 마쳤다. 물만 있었던 논에 파란 모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이 귀엽고 어여쁘다. 큰 산 하나를 잘 넘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일주일 후에 예초를 위한 우렁이를 논에 넣어주면 우렁이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 사각사각 맛있게 풀들을 먹을 것이다. 모를 낸 논에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왔다. 긴 다리를 뻗어 모와 모 사이를 살포시 밟으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조만간 어딘가에 숨어있는 오리 가족들도 찾아와 가을까지 살다 갈 것이다. 모내기를 마쳤으니 이제는 밭으로 가자. 자주 내리는 빗속에 작물보다 몇 배 더 자란 풀들이 나를 부른다. 굳이 부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끝>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