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의 노래
‘에벤에셀’은 사무엘상의 언약궤 서사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도움의 돌’ 혹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그 자리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이름 짓습니다.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은 사무엘상 4장에서도 등장합니다. 그 때에는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 되었습니다. 또한 5장 1절은 여호와의 궤를 빼앗긴 치욕의 장소로서 에벤에셀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4장의 에벤에셀은 살며시 넘어가고 위대한 승리가 있는 7장의 에벤에셀만을 기억합니다.
오늘날의 지도에는 에벤에셀이란 지명이 없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사무엘상 4장의 에벤에셀과 7장의 에벤에셀이 이름이 같을 뿐 다른 곳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에벤에셀이란 이름은 7장에 기록된 전쟁의 승리 이후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이전 사건인 4장의 에벤에셀은 다른 곳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두 곳은 같은 장소입니다. 다만 7장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신 위대한 승리의 에벤에셀을 체험한 사람들이 4장의 패배를 복기했고 7장의 승리 이후에 얻은 그 이름을 간직한 채 4장의 패배의 장소가 7장의 승리의 장소와 같은 곳이었음을 강조해서 4장에서도 에벤에셀이라 부른 것입니다. 성경은 조선왕조실록처럼 철저히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큰 안목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한 것기에 충분히 가능한 생각입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 영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주시고 패배의 자리에서 다시금 승리케 하시며 상처의 자리에 온전한 치유를 주신다는 교훈 말입니다.
우리는 실패한 경험을 빨리 잊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곳에서 다시 승리케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과정을 겪었습니다. 실패의 자리를 얼렁뚱땅 피하게 하거나 다른 성공으로 대충 잊어버리게 하지 않으시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금 그 자리에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치유 받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바닷가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그의 실패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회복이 없었더라면 베드로는 평생 후회와 죄책감과 실패감과 자기비하에 억눌려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시고 그와의 사랑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실패와 패배의 경험, 후회스럽고 부끄럽고 억울하거나 분한 일들이 다시 떠오를 때 심리학이나 명상은 잊어버리고 흘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치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이들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치유케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금 승리케 해 주십니다. 지난 일을 끝까지 잊지 말고, 이를 갈고, 와신상담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분은 예수님이지 베드로가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애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믿음 지켜 살다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셔서 실패의 자리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무너졌던 곳에서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온전한 치유를 덧입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에벤에셀’의 참된 의미입니다.
찬송가에도 ‘에벤에셀의 노래’가 있습니다.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입니다. 에벤에셀은 2절에 나옵니다.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 구절이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라는 ‘에벤에셀’입니다.
영어 가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에벤에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Here I raise my Ebenezer!/지금 여기 나의 에벤에셀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우리 찬송가는 ‘에벤에셀’을 그대로 우리말 가사에 실을 수 없어서 그 뜻을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그 지혜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이 찬송이 ‘에벤에셀의 노래’라는 사실이 다소 불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찬송의 의미를 알게 되신 여러분은 앞으로 이 찬송을 부를 때 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에벤에셀의 돌을 높이 들어 세우는 감격의 마음으로 찬송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의미는 여기까지가 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셨듯이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라고 이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위치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에벤에셀의 돌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지금 여기’에 여전히 높이 들려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구구절절한 커다란 비석을 세우거나 웅장한 개선문을 세우는 대신 흔하디 흔한 돌을 들어 에벤에셀이라 한 것 같습니다. 역사 속의 한 장소, 지리적인 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이들의 '지금 여기'가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브라스 밴드의 연주로 이 찬송을 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사무엘이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에벤에셀의 돌을 높이 들어 올린 뒤 그 돌을 세우는 거룩하고 감격적인 장면이 눈 앞에서 재현되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의 실패의 자리가 다시금 여러분의 에벤에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눈물의 자리가 다시금 여러분의 에벤에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후회와 상처의 자리가 다시금 여러분의 에벤에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여기'가 늘 새로운 에벤에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SndEFFaUxC0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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